치과의사 모녀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8년간 재판을 받아온 이도행(李都行·41) 피고인에게 무죄가 최종 선고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성·徐晟 대법관)는 26일 1995년 발생한 이 사건의 재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도행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는 1심 사형, 2심 무죄,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항소심의 두번째 무죄, 그리고 검찰의 재상고로 이어지는 엇갈린 판결 끝에 자유인이 됐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없고, 정황 증거도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명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더라도, 이 사건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형태(金亨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아니라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이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점을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며 "8년간 이씨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경찰과 검찰, 법의학자 등의 과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언론의 선정보도로 인해 초기에 사건이 왜곡된 측면도 짙다"며 언론에 대해 섭섭함과 함께 반성을 촉구했다.
이씨는 이날 선고가 내려진 뒤 "한달전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지 못한게 한스럽다"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그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으며 곧 의사로 개업할 예정이다.
외과의사인 이씨는 95년 6월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M아파트 집에서 치과의사인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욕조에 옮겨놓은 뒤 아파트에 불을 질러 위장한 혐의로 사건발생 3개월 만인 9월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범행을 입증할 물증이 없는데다 이씨가 범행을 부인해 1심부터 검찰과 변호인은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을 벌였다. 특히 사망시간 등에 대한 법의학자들의 감정결과와 '추정'만 가능한 정황 증거의 신뢰성을 둘러싼 공방은 법의학, 검시제도, 수사관행, 사형제도 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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