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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누가 그를 흉내낼 수 있으랴/소설가 김주영 故 이문구씨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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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누가 그를 흉내낼 수 있으랴/소설가 김주영 故 이문구씨 추도사

입력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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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수술 후에 다소 수척하긴 했지만 병실로 찾아간 지 하룻밤 사이에 새벽 신문을 받아보니 떠났다 하네. 허, 그 사람 참….수술 받은 뒤에도 작가회의 모임이나 문학상 시상식이 있는 날에는 필경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몰인정하다는 평판을 무릅쓰고 그에게 한 잔의 술도 권한 일이 없었다. 옛날 청진동 시절에 퍼마신 술로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터인데, 명색 이웃하고 산다는 나까지 그 골병이 든 위장과 허파에다 또 다시 술을 퍼부어 넣는 일에 가담하는 게 결코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좌석에서도 가만히 곁눈질을 해 보면, 선후배들이 권하는 술을 매몰차게 내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가만히 소문 들어보면, 잠실 집을 끊임없이 찾는 많은 문단 후배들이 반드시 술병을 들고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중얼렸다. "그렇게 덤벼들지 말고, 근력 추스를 때까지 좀 가만 놔둘 일이지, 기력 쇠잔하고 수척한 얼굴 바라보면 술 권할 마음들이 들까."

하지만 청진동 시절, 김동리 선생 일을 도맡아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그때, 서울로 올라오면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내겐 이문구씨 뿐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손목은 잡아 끌지 않고 자기 먼저 앞장서서 휘적휘적 맥주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거나해 진 이후에 식대는 항상 자기가 치렀다. 그것도 내가 부담 느낄까 봐 언제나 현찰로 냈는데 철없던 나는 그래서 그가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질 때마다 돈이 튀어나오는 알부자인 줄 알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내가 문인들과 안면을 틀 수 있게 주선했다. 촌놈 기질,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 잡아떼고 모르는 척하던 무던함,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어도 근본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흉허물하지 않던 그 초연함이 이 순간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한번 마음 먹으면, 곁에 벼락이 떨어져도 꿈쩍 않을 그 줏대를 이승에 남은 어느 누가 감히 흉내낼 수 있을까. 그 어리숙한 사람이 어떤 일에 직면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에겐 이상하게도 적이 없었다. 사람을 끌어안는 힘이,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광대한 흡인력이 그에겐 있었다. 한때 그에게는 항상 정보계 형사가 오랫동안 밤낮으로 붙어 다녔다. 그 형사를 이문구씨는 밥 사먹이고 술 사먹이고, 그 사람 아이 돌잔치까지 뒷바라지하면서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데리고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분이 바로 나와 고락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 그 형사는 얼굴이 벌개져서 머쓱한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곤 했다.

언젠가 그가 쓴 글에서 나를 두고 순경과 경비원을 구별하지 못하는 촌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시골에서 생활할 때부터 그 두 삶을 분명히 구별할 줄 알았다. 오히려 자기가 그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사람을 이승의 자리에서 잃고 말았다. 허, 그 사람 참…. 오래 살아서 그리고 건강을 회복해 청진동 골목 술집에서 한자리 걸판지게 들이켤 날을 참말로 고대했건만 이렇게 훌쩍 떠나다니…. 오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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