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축포' 대신 전쟁 위기가 한동안 '안도하던' 증시를 다시 얼어붙게 만들었다.장미빛 대통령 취임사와 신용평가기관인 S&P의 국가 신용등급 유지 소식도 투자심리를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25일 증시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불안감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한 채 외국인의 매물 공세 속에 또다시 6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수급 호전 對 지정학적 리스크
그동안 국내 증시를 지탱해온 것은 기관이 주식을 사들이는 수급 호전이었다. 국민연금의 증시 투입, 국민은행의 1조원 주식 투자 등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기관 매수가 지수 600선 회복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같은 수급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 불안감이 다시 고조되며 지수가 급락하자 추가 하락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LG투자증권 서정광 책임연구원은 "최근 600선 지지는 수급 개선 때문이지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며 "증시 급락은 이라크전과 북핵 문제가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는 시각이 잘못됐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그동안 증폭 단계에서 3월 중 어떤 식으로든 해소 단계로 접어들 전망"이라며 "전쟁 위기가 사라지면 안전자산 선호현상도 완화돼 자금이 증시로 몰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기금과 금융기관의 투자 자금이 대기하고 있고 개인 자금도 최대 3조4,000억원까지 증시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치솟는 유가와 곤두박질 반도체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기 침체에서 파생된 유가 급등과 반도체가격 폭락도 향후 장세를 가늠할 주요 변수다. 동원증권 분석 결과, 유가가 급등한 11월 중순 이후 아시아 각국의 주가 등락률은 그 나라의 석유의존도와 반비례했다. 하루 석유소비량이 많은 한국과 대만은 증시가 하락한 반면, 산유국인 인도와 말레이시아 증시는 오히려 올랐다. 동원증권 김세중 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상승기조를 유지하는 한 주가의 강력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가격에 대해 동양종금증권 민후식 반도체 팀장은 "반도체가격 등락 주기(사이클)가 점차 짧아지고 있으며 등락폭도 가파르다"며 "최근 3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265M DDR D램 현물가격이 3월 일시 회복되더라도 다시 조정 받을 가능성이 크며, 중기적으로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큰 폭의 수요증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탈이냐 복귀냐
최근의 외국인들의 패턴은 지속적으로 사거나 추세적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고 팔기를 반복하는 '트레이딩'(trading:기술적 매매)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물과 현물을 번갈아가며 매수·매도하며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고 있다.
대우증권 한요섭 선임연구원은 "외국인들이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어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다"며 "내달 중순께로 예상되는 미국의 이라크전 개시와 향후 세계경기 전망의 불투명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관망적인 자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펀더멘털은 괜찮은가
지정학적 리스크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지만, 그렇다면 기업실적과 경기는 괜찮은가.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과매도 영역이 해소된 뒤 시장의 이슈는 펀더멘털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낮춰지고 있는 만큼 펀더멘털 측면에서 추세적 상승을 낙관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중장기 시장 전망에 대한 눈높이도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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