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장호라는 노인이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에야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의 기사를 통해 그가 1920년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지역에 세워진 한인비행학교에서 활동한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과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인비행학교의 실체가 드러났다. 많은 이들은 한인 최초의 비행사가 1921년 일본에서 비행사 시험에 합격한 안창남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보다 1년 반을 앞서 활동했던 한인 비행사들이 있었다. 1920년 캘리포니아에는 '동경에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는 굳은 결의로 비행학교를 세우고 이역만리 창공에서 훈련했던 한인들이 그들.KBS 1TV가 밤12시에 방송하는 '수요기획―도쿄를 폭격하라! 1920년 한인 전투 조종사들'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인비행학교에 대해 밝혀낸다.
비행학교를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캘리포니아에서 항일 투쟁을 벌인 노백린 장군과 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가 300만평에 이르는 농장을 경영하며 '쌀의 왕'으로 불린 거부 김종림. 하지만 비행학교는 몇 개월 못가 폐교되고 훈련생들은 중국군 항공대원으로, 임시정부 육군비행병으로, 미국 CIA의 전신이었던 OSS의 요원으로 흩어져 독립운동을 계속해 나간다. 김용두 PD는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김종림,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던 한인 비행사들은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고, 비행학교의 흔적은 80년 넘게 방치된 상태"라며 "이들의 행적과 실체를 밝히려 했다"고 말했다.
/최지향기자 mis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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