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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경부고속전철 천성·금정산 관통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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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경부고속전철 천성·금정산 관통 논란

입력
200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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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구 지하철 참사를 만들겁니까." 22일 부산 시청 앞 아스팔트 광장 가운데 버티고 선 천막안. 단식 농성에 접어든지 17일째지만 지율(知律)스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시청 앞 곳곳에는 '고속철도 천성산 금정산 관통을 백지화하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지율 스님은 "고속철도가 환경파괴 문제 뿐 아니라 터널 공사의 안전성조차 의문시 되는데도 경제적 효율성만 따지며 공사를 강행하면 나중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고 말했다. '환경파괴'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고속전철 천성산 금정산 관통문제'가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경남 양산시 천성산과 부산 금정산을 각각 13.4㎞, 7.4㎞ 길이의 거대한 터널로 뚫고 지나가는 현 계획노선이 철저한 사전조사 없이 진행돼 환경파괴 뿐 아니라 또 다른 대형사고 유발 위험까지 제기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위험한 지질, 지하수 유출 위험

고속전철이 터널로 관통하는 금정산 천성산 구간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지역이 단층대가 발달한 지질구조라는 점과 지하수 유출 위험 때문.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이인현 박사는 "금정산 천성산 지역은 양산단층과 동래단층 사이에 끼어 단층파쇄대(암석과 암석사이의 깨진 부분)와 절리군(암석에 금이 간 틈)이 많이 나타나는 연약한 지반"이라며 "터널 공사시에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터널 완공 후에도 끊임없이 모니터링 하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양산단층대는 활성단층 논란을 빚고 있는 지역. 함세영(咸世榮) 부산대 교수는 "인근 동래온천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도 양산단층대가 최근에도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라며 "이런 지역에 거대한 터널이 뚫고 지나갈 경우 발생할 위험성을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지하수의 다량 유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단층과 절리의 발달로 다량의 지하수가 암석들 사이로 이동하는데, 터널이 이 수맥을 뚫고 지나갈 수 밖에 없어 어마어마한 양의 지하수 유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실제로 1999년 완공된 영천댐 도수로터널 굴착 당시 하루에 15만 리터의 지하수가 터널내로 유출돼 인명피해 사고까지 발생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소 관계자는 "금정 천성산 지역도 영천댐 지역과 지질 구조가 유사해 지하수의 다량유출 위험이 있다"며"지하수의 유출량이 어느 정도인지, 이 때문에 지반 침하현상이 빚어지지 않는지 등의 정밀한 지질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천성산 지역은 기초 조사조차 안돼 있어

사정이 이렇지만 고속철도 관통구간인 천성산, 금정산 구간에 대한 정밀 지질조사는 물론 천성산의 경우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고속철도공단측은 터널 공법이 발달돼 있기 때문에 터널굴착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공사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해 해결할 수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시속 300㎞의 빠른 속도를 내는 고속전철이 터널을 통과할 때 내는 압력 등이 주변 지형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도 고속철도공단이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이 터널내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하수 고갈은 생태계 파괴

터널의 안정성 문제가 '가상의 위협'이라면 '생태계 파괴'는 보다 명확한 '현실적 위협'이다. 터널 굴착 과정에서 수맥을 건드려 지하수 유출을 피할 수 없어 지하수 고갈이 우려되기 때문. 특히 천성산은 희귀지형인 고층산지 늪이 22개나 발달해 있고, 13개의 계곡이 형성된 곳으로 지하수가 끊길 경우 천성산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게 된다. 이병인(李炳仁) 밀양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영천댐 도수로 터널의 경우 지하수 고갈로 인근 산림이 파괴되는 등 대규모 민원이 제기됐다"며 "지하수 고갈 피해가 명확한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안노선 없나

고속철도 공단은 일부 생태계 파괴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 천성산 금정산을 피해 다른 노선을 선택할 경우, 주민 거주지를 지나게 돼 또 다른 민원과 함께 보상비가 급증하기 때문에 산지를 지나는 현 노선이 경제적으로 최적이라는 것. 이에 대해 이성호(李成浩)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겠다는 공급자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며 "경제적 계정외에 환경 등의 항목을 포함, 수용자 위주의 방식으로 전환해 노선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속철도 천성산 금정산 관통 백지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 인수위는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 언급 없이 일정을 마감했고, 이 구간에 대한 공사 입찰은 계속 진행중이다. 지율 스님은 "노 대통령이 대선기간 백지화 약속을 했고, 민주당측에서 지지성명까지 내달라 부탁해 범어사, 내원사 스님들이 노 후보에 대한 지지광고까지 냈는데 이제 와서 아무 말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부산·양산=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천성산

천성산은 무제치 늪이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등 10개의 보호지역이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천성산 일원이 상수원보호구역, 보안림, 야생조수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자연환경보존지역 등으로 지정돼 있고, 천성산에 자리잡은 내원사와 미타암은 전통사찰보존지역으로 묶여있다.

특히 천성산은 희귀지형인 고층산지 늪이 22개가 형성돼 있어 생태적 중요성이 더욱 큰 곳이다. 늪지는 동식물의 중요 서식처로서 생태계의 자궁이라 불리는 곳.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화엄늪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특정야생동식물인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38종의 습지식물을 포함해 190종의 식물이 분포해 있고, 밀밭늪에서는 미치광이풀 등 53종의 습지식물이 조사됐다. 늪지외에도 천성산 일대에서 희귀식물인 솔나리, 산작약, 천마 등이 발견돼 생물종 다양성이 뛰어나다.

동물로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참매, 솔부엉이 등을 비롯해 까치살모사, 능구렁이, 도룡뇽, 표범장지뱀, 왕은점표범나비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22개의 고층늪지에 13개의 계곡, 9개의 능선으로 어우러진 천성산은 경관도 빼어나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린다. 신동국여지승람은 천성산을 가리켜 '천가지 연꽃이 핀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경부고속전철이 이곳을 관통할 경우, 지하 수맥을 자르고 지나갈 수 밖에 없어 지하수 고갈로 인한 습지파괴 및 천성산 전체 생태계가 위태롭게 된다.

/송용창기자

● 경부고속전철 사업

1990년 기본계획이 확정된 경부고속전철 사업은 서울∼부산간 412㎞를 최고속도 300㎞/h의 고속전철로 잇는 대형 국책사업. 97년 외환위기로 2단계 사업으로 전환해 2004년까지 서울∼대구 구간을 우선 건설한 후 대구∼부산 노선은 2008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대구 부산간 신선이 완공되기 전에는 고속전철이 임시로 다닐 수 있도록 대구 부산간 경부선 노선을 전철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1단계 사업에는 12조 7,000여억원, 2단계 사업에는 5조 6,981억원이 투입될 예정.

1단계 사업이 끝나면 서울∼부산간 운행시간은 2시간 40분이 걸리게 되며 대구∼부산 노선이 최종 완공되면 서울∼부산을 1시간 56분만에 달리게 된다. 기존 새마을호의 4시간 10분보다 2시간 14분이 단축된 것. 1단계 사업은 90% 가까이 진행됐으며 2단계 사업은 지난해부터 토지 매수에 들어갔고, 일부 구간의 노반공사도 시작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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