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에서 재평가가 가장 필요한 정치인 중 한 명은 유진산씨다.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야당 당수였던 유씨는 박정희정권과 타협적 노선을 추구해 소위 '사꾸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는 70년대 초 김영삼, 김대중씨가 제기한 40대 기수론을 받아들여 야당의 세대교체를 이뤄냈고 양김이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줬다. 밖으로는 민주투사이면서도 안으로는 제왕적 총재로 사당정치를 편 양김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살신성인의 세대교체를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꾸라 정치인'이라는 그가 과감히 했던 것이다.
어쨌든 유진산의 40대 기수론 수용에 따라 막을 열어 지난 30여년간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양김의 시대가 어제 노무현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양김은 어려웠던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민주투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87년 분열에 의해 국민들이 어렵게 싸워 획득한 직선제 개헌의 성과를 노태우에게 선사하고 사당정치로 국민을 실망시킨 한국정치의 빛과 그림자이다. 다만 이들의 공과에 대한 구체적인 대차대조표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르며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 작업은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이 반독재 민주화에 앞장을 섰고 김영삼 전대통령의 경우 하나회 해체 등을 통해 문민통치의 확립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경제위기에 의해 그 책임문제로 쓸쓸하게 퇴임을 해야 했던 김영삼 전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대통령 역시 아들 비리에 이어 북한비밀 송금문제로 별로 즐겁지 않게 퇴임을 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또다른 안타까운 일은 이 두 전직 대통령이 정치를 떠난 현재까지도 그간의 분열과 경쟁에 따른 감정적, 정치적 앙금을 버리지 못한 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김영삼 전대통령은 북한핵문제와 대북송금문제가 터져 나오자 대북송금은 북한의 핵개발과 군비증강을 도운 이적행위라며 김대중 전대통령을 반드시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물론 대북송금의 진상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 밝혀져야 하고 필요하면 사법처리도 해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간에는 대북정책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전대통령을 사법처리하라는 것은 무리이고 이를 김영삼 전대통령이 주장하고 나선 것은 더욱 그러하다. 또 두 사람이 이제 정계를 떠난 이상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둘 간의 화해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김동길씨는 군사독재시절 양김이 정계를 떠나 낚시나 해야 한다는 낚시론을 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제 다른 의미에서 낚시론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즉 이제야말로 두 전직 대통령이 과거의 앙금을 털고 한번은 거제도로, 한번은 하의도로 상대방을 초대해 함께 낚시를 즐기며 옛 이야기도 나누고 국정조언도 해주어야 하는 때이다.
양김이 함께 낚시를 즐기며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전파를 탈 때 두 사람의 지지지역과 지지자들간에 생겨났던 증오의 앙금이 사라질 것이고, 최근 유행하는 경상도 전라도 생활사투리 시리즈만큼이나 많은 웃음을 국민들은 선사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쪽은 선임자인 김영삼 전대통령이다. 양김시대가 추한 앙금이 아니라 아름다운 화해로 끝을 맺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양김의 아름다운 화해가 그립다.
손 호 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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