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문짝에 깨진 유리창, 여기저기 뒹구는 버려진 가구들.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3동 주공아파트 4단지 401동의 어수선한 집에서 아침부터 보일러를 떼내느라 5, 6명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송파구의 '사랑의 집 꾸미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구청 직원들이다. 이들이 떼어낸 보일러와 형광등, 싱크대는 손질을 거쳐 독거노인과 장애인, 소년소녀가장의 집에 무료로 설치된다. 2001년 말 시작된 '사랑의 집 꾸미기'의 자원봉사자 1,000여명은 후원금을 갹출, 지금까지 소외계층 200여 가구의 벽지와 장판을 교체하는 등 주거환경 개선에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올해 잠실지역 저밀도 5개 단지의 재건축이 본격 시작되고 주민들이 보일러 등을 버리고 이주하는데 착안, 주요 전략을 수정했다. 후원금 모금에서 탈피, 재활용품의 수거 및 수리 후 설치로 전환한 것이다. 송파구 사회복지과 김동호 주임은 "주민 대부분은 난방시설이 갖춰진 곳으로 이사하기 때문에 그동안 사용한 보일러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보일러는 재활용되지 않고 대부분 고철로 팔린다"고 말했다.
구는 이달 말 철거가 시작되는 4단지 재건축조합에 올초 계획을 설명, 어렵지 않게 수거 허락을 받았다. 철거업체도 선뜻 '고철 수익금'을 포기했다.
'사랑의 집 꾸미기' 자원봉사자들이 11일부터 모은 폐기물은 보일러 53대, 전등 10여점, 주방기구 1점. 보일러 기술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팀 짜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한번 모이면 적게는 10개, 많게는 20여개의 폐기 보일러를 건졌다. 하루 평균 200여 가구(10개동)를 수색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날 자원봉사의 팀장 역할을 한 (주)건축과공간 현장소장 조래경(趙來庚·46)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참여하고 있다"며 "자원도 재활용하고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공짜'라고 아무거나 수거하지는 않는다. 보일러는 대개 10년이 사용기한. 99년 이후 설치한 가스 보일러가 수거 대상이지만 '아주 깨끗이 사용한' 98년식도 가끔 뜯는다. 자원봉사자중 보일러 기술자인 조영조(42)씨는 "잘쓰면 앞으로 10년 이상 쓸 수 있는 물건들"이라며 "중고보일러도 구입해 설치하려면 40만∼50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는 올해 200가구에 보일러 등을 설치해 줄 계획이다.
앞으로 수거할 폐기용품의 규모도 만만치 않아 구는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 4단지의 추세로 볼 때 전체 1,350여점(3억7,000여만원 상당)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주임은 "지난해 5월 이주가 시작된 4단지의 경우 공백기간이 길어 외부 손을 탄 집이 많다"며 "하지만 이달초 이주가 시작된 3단지는 그런 기간이 없어 좋은 물건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활용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구는 재건축 단지 내에 있는 수백그루의 은행나무 벚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등을 거둬 30%는 서울시 나무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는 학교 등 기관이나 개인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이유택(李裕澤) 구청장은 "이 사업의 주체는 구가 아니라 자원 봉사자와 재건축단지 주민들"이라며 "독거노인 등 2,000여 기초생활수급대상 가구 중 우선 급한 곳부터 도움이 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