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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이라크 화학무기에 5,000명 몰살… 되살아나는 전쟁 악몽/공포로 밤지새는 쿠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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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이라크 화학무기에 5,000명 몰살… 되살아나는 전쟁 악몽/공포로 밤지새는 쿠르드족

입력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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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이 다가오면서 누구보다도 가슴 졸이는 사람들은 쿠르드족이다.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들은 전쟁이란 말만 들어도 15년 전 악몽을 떠올린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1988년 이란과 전쟁 중에 이라크 북부 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5,000여 명의 쿠르드족을 숨지게 했다. 쿠르드족이 이란과 손잡고 이라크를 위협했다는 게 보복 공격의 '명분'이었다.

이라크전이 터질 경우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족이 미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하며 생화학무기로 자신들을 다시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쿠르드족 사이에 번지고 있다.

쿠르드족 주부인 마리암씨는 영국 BBC 방송 기자의 질문에 "화학무기 공격을 하는 비극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전쟁이 터지면 여섯 살 된 아이는 이란에 있는 친척집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는 생화학 공격에 대비, 방독면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운명을 보호할 수단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고 말하는 쿠르드족들의 얘기 속에는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물론 그들은 '이번에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은근히 갖고 있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 속에서 번번이 이용만 당해온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희망 보다는 절망이 앞선다.

이라크, 이란, 터키, 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모두 2,500여만명으로, 이라크에는 360여만명이 살고 있다.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쿠르드족은 고유 언어를 갖고 있지만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이라크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북위 36도 이북)에 기대어 사실상의 자치를 누려왔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은 최대 7만 5,000명의 반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불행히도 단일한 정치·군사세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라크 북부 내에서도 북쪽은 쿠르드민주당(KDP), 남쪽은 쿠르드애국연합(PUK)이 각각 통치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 민주적 연방정부가 들어서 합법적인 자치 국가를 세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주변국들 모두가 쿠르드족의 독립을 원하지 않고 있는데다 미국도 아랍 동맹국들의 입장을 배려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쿠르드족이 1,000만명에 이르는 터키는 쿠르드족의 독립에 가장 부정적이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 시 터키 군사기지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터키 눈치를 봐야 한다. 쿠르드족이 24일 "만일 이라크전이 발발해 터키군이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통과할 경우 분쟁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터키와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현재 이라크 북부 지역에는 이미 미군 특수부대 수백명이 들어와 쿠르드족과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은 미국과 이란에 수차례 협력하고도 한번도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

1970년대 이라크― 이란 분쟁 당시 미국이 뒤를 봐주던 팔레비 왕조와 협력했던 쿠르드족은 두 나라의 평화 협정 이후 이라크의 보복 공격을 받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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