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23일 '부(富)의 부당한 대물림 불허' 발언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지금까지 재벌이 관행적으로 해 온 불법·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철저히 단속하고, 이미 총수가 사법처리된 SK그룹 외의 다른 재벌기업에도 SK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경고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노 당선자는 이날 재벌의 불법세습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거듭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대법원이 법 조항이나 자구의 개념적 해석에 매달리지 말고 유연하게 해석하면 된다"며 사법부에 대한 월권으로 비칠 소지가 있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노 당선자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을 주장하며 검찰 수사에 방어막을 쳐온 재계의 행태도 문제삼았다. 노 당선자는 "실제 경제가 심리적으로 위축되는지 설문조사를 해보자", "목소리 큰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덩달아 간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경제가 원칙대로 될수록 중소기업이나 시장의 약자, 거래의 상대방, 주주는 훨씬 더 안전해지는 것"이라며 개혁의 후퇴는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 얘기들만 놓고 보면 SK에 대한 수사가 삼성 두산 한화 등 시민단체가 겨누고 있는 다른 재벌기업으로까지 번지는 게 아니냐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재벌 수사가 주는 정치적 부담을 함께 거론함으로써 자신의 발언이 확대 해석되거나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경계했다. "이 사건(SK)과 몇몇 거론되는 사건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검찰더러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화끈하게 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정치적 의도나 기획에 의한 개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서 노 당선자의 이런 고민이 읽혀 진다. 일부에선 이를 근거로 "재벌에 대한 전면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내다보기도 한다.
결국 새 정부는 경제적 충격파와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사법 조치보다는 조세제도 등 시스템에 의한 재벌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