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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소외

입력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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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끔찍해서 신문을 읽어 내려가기가 고통스러웠다. 다음 날 택시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TV를 보다가 외면했다고 동감을 표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더 커진 이유로 안전을 다루는 사람들의 잘못이 꼽히고 있으니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몇 년간 의자가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돼 있던 뉴욕 지하철을 타다가 서울 지하철의 푹신한 좌석에 앉으면서 미국적 차가움과 우리식 따뜻함으로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불에 타느냐, 안 타느냐를 철저히 따진 생명에 관한 문제였음을 이번에야 알았다.■ 때마침 10년 만에 서울에 온 뉴욕 교포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저녁 내내 얼굴이 어두웠다. 종로와 인사동을 한참 걸은 뒤 술 한잔에 입을 뗀 그는 "거리의 사람들이 안쓰러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곤 알쏭달쏭하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독한 공기 속에서 살게 된 거냐." 멀뚱한 표정을 보더니 자기가 대답했다. "사람을 위해 정치를 했으면 이렇게 안됐을 거다." 수 십년 간의 정치가 정치를 위해서만 있어 왔다는 말이었다. 역경의 현대사를 익히 아는 그의 질문은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볼 만한 것이었다.

■ 한달쯤 전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도들이 서울의 도시개발을 둘러보고 쏟아낸 말들을 읽은 적이 있다. "빌딩 대폭발…예측 불가능…커다란 계획 없이 자잘한 도시개발들이 여기저기서 그냥 폭발…새로운 개발은 있으나 진정한 개발은 없고…전통은 그냥 개발에 밀려 사라질 뿐…30년도 안된 건물을 철거하는 도시…뉴욕도 대도시지만 거리는 '휴먼 스케일'…사람들이 모일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에 따르면 서울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도시였다.

■ 그러고 보니 뉴욕에서 온 친구도 비슷한 인상을 말하고 있었다. 버스 차창 밖을 보다 "불쑥 불쑥…스멀 스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난데 없는 건물과 거리, 지독한 공해 속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위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이 소외받고 있다는 말이다. 안전불감증이란 사람이 소외당한다는 말과 같다. 소외의 극치가 바로 죽음이니 대구의 그들을 우리가 죽였다는 통곡이 맞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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