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가 전국민을 '지하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가족이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부상자들은 신체적 부상 이외에 상실감과 분노, 불안 등 정신적 문제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그것이다. 태풍이나 화재 같은 큰 재난, 교통사고, 강간, 가족에 의한 구타, 잔인한 사고의 목격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대부분(70∼90%) 정신적 문제가 따라온다. 안절부절하며 불안해지고, 사건이 자꾸 생각나고, 사건과 관련된 것을 피하려는 증세를 보인다. 외부자극에 매우 예민해져 별 것 아닌 일에도 깜짝 놀라고, 잠을 못 이루거나 악몽을 꾸며, 자율신경계 장애로 혈압이 오르고 가슴이 뛰기도 한다.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사건을 잊지만 4주가 지나도록 극복하지 못한다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사고 후 충격에 빠진 이들에게 전문의 치료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배려다. 외상성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는 한양대구리병원 신경정신과 김대호 교수는 "사고 직후 정신과 전문의가 투입된 외국 사례는 오히려 환자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하며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표현하는 것. 또 "이런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거나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하는 분노감정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계난이나 치료비 부담에 대한 물질적 도움도 물론 필요하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평소 대인관계가 좋고 성격이 활달한 경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적지만, 문제를 내재한 사람일 경우 수년이 지나도 사건을 잊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군이 있다는 뜻인데 아동학대, 성폭행, 왕따 등 어렸을 때 외상적 사건을 겪은 사람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주위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지 않는 경우 등이다.
한달이 지나도 불안 증세가 계속되거나 환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우울증과 달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우울증세에는 약물치료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6∼8명이 함께 모여 사고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인지행동치료를 실시한다.
또 최신 치료법으로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이 일부 병원에 도입돼 있다. 사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뒤 안구운동을 하게 하면 연상작용이 일어나면서 비정상적으로 뇌에 억눌려있는 기억을 정상적으로 재처리하게끔 한다. 외국에선 치료기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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