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흐름과 대내외 경제 여건이 심상치 않다.통관기준으로 무역수지가 1월에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2000년 2월이래 3년 만에 처음이다. 이라크 사태, 북핵 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으로 주가가 빠지고 유가도 크게 올랐다. 국제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등 호재보다는 악재가 많다.
경제심리가 불안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통계청에 의하면 소비자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가 1월에 79.6으로 미국 9·11테러사태 때의 79.0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1.9%로 12월에 비해 0.4%나 높아졌다.
무엇보다 성장유형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난 2년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동력은 소비를 주축으로 한 내수였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 가계대출 확대로 소비자들이 쉽게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부작용도 컸다. 풍부한 유동성이 일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자산 버블 조짐도 있었다. 부채는 갚아야 하는데 실질 소득의 증대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금 상환 압력으로 소비증대에 기여하였던 가계부채가 이제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수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이미 작년 7월부터 위축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과거의 경기하강 수준으로까지 하락했다는 일부 연구 결과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내수 위축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경기는 2002년의 반짝 상승 후에 다시 침체되는 소위 더블딥(Double Dip)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누적된 가계부채로 내수의 힘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올해 우리경제의 향방은 수출에 달려있는데, 대외여건이 불투명하여 불안한 상황이다. 다행히 수출은 지난해 7월 이후 두자리수 증가세를 시현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경기둔화를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사태, 미국경기의 회복세 지연 등 위협요인들이 버티고 있어 올해의 수출 환경은 밝은 편이 아니다. 전쟁 프리미엄으로 인해 석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국제유가는 악의 축 발언 이전인 2002년 1월에 비해 최근 70% 가까이 상승했다.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인 미국경기의 회복여부도 관심사다. 미국경제는 소비심리 악화, 투자마인드 위축으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재정적자, 경상수지 적자 등 80년대 미국경제를 위협했던 쌍둥이 적자 현상이 재현되는 조짐도 보인다. 특히 연간 경상수지 적자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5,000억 달러에 육박해 세계수출물량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이라크 사태의 조기 종결과 같은 극적인 사태 반전이 없는 한 세계경제는 당분간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경기 급랭이라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97년 말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의 경제사정은 양호하다. 1,2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등 기초체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반면 국가신용등급의 하향움직임, 44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양산, 이라크전쟁 및 북핵 문제 등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위험요인들이 많이 있다. 자칫 성장둔화, 경상수지 적자, 물가불안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
통화와 금리의 탄력적 운용, 재정집행의 시기 조정 등으로 경기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대내외 위험요인들을 예의 주시하고 돌발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준비자세를 갖춰야 한다.
소비자들도 우리 경제의 실력을 믿고 불필요한 과잉반응을 자제해야 한다. 경제 살리기에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홍 순 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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