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길 지음 마음산책 발행·9,500원원재길(44·사진)씨가 강원 원주에 자리잡은 지 3년 째다. 시를 쓰고 소설을 써야 하는데, 번잡스런 서울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아내와 딸과 산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산문집 '올빼미'를 보내왔다. 손수 그린 그림과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묶었다.
"나는 올빼미족입니다. 낮엔 온종일 하품하며 빈둥대다가 땅거미가 내리면 갑자기 두 눈에 불을 켜고 활개치는 사람이지요. 지금 시각은 새벽 네 시 반. 모두들 편안히 잘 주무시고 계시는지." 산문집은 올빼미 작가가 시골에서 난 사계절의 경험을 담은 것이다. 맑은 풍경에서 우려낸 사색의 맛이 진하다. 등기우편물을 전해주는 우체부와 여호와의증인과 잡상인들도 모두 잠든 밤에 원재길씨는 깨어나 글을 쓴다. 올빼미 생활의 즐거움을 예찬하는 것으로 봄 얘기를 시작한다. 올빼미는 저녁 때 술자리에서 조는 일이 드물다. 작가는 친구인 소설가 성석제씨는 술을 마셨다 하면 병든 닭처럼 존다면서, 불쌍하다고 혀를 찬다. 지난밤 꿈에서는 시인 고(故) 기형도를 만난다. 절친했던 문우가 훌쩍 세상을 떠난 때가 꽃샘 추위가 닥친 봄날 새벽이었다.
여름 어느날 소나기가 쏟아졌다. 서늘한 기운에 스물 몇 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에 오한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일주일 내내 앓았다. 그때 가까이서 느꼈던 죽음의 기운이 20여 년 만에 다시 작가를 찾아온다. 그는 나무와 하늘과 구름에 안긴 집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에는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떠올린다. 여름내 게으름 피우다가 추수철에 배를 곯게 된 베짱이. 작가는 시골에서 느리게 살기를 배웠다. 그 느림이 때로는 좀 넘쳐나는 것도 같다. 양치질도 느리게 느리게 하려다 보니, 자일리톨껌을 씹는 것으로 대신할 때가 많아졌다나. 느림이 아니라 게으름의 대가를 치르는 것 같다면서 원씨는 천진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겨울에 폭설이 쏟아졌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어렸을 때 고픈 배를 안고 눈오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저 눈송이들이 모두 찐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중얼거렸던 한때, 시골에서 시간은 멈춰선다. 작가의 눈은 어제로 향한다. 그때 글쓰는 사람은 자연과, 적막과 한몸이 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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