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지음 생각의나무 발행·1만3,000원'말을 아낄 것/ 겸허할 것/ 사람을 가려서 만날 것, 단 만나서는 진실할 것/ 퇴폐적 행위로부터 자신을 멀리할 것/ 매일매일 학습할 것.' 1989년에 적은 메모다. 스물 네 살,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 무렵이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38·사진)씨의 산문집 '명주'는 막 지나온 80년대와 90년대에 대한 기억이다. 9·11 테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제 같은 시사평, 몇 권의 책에 대한 서평도 함께 엮었다.
80년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개인의 것에 머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G지역 활동보고서(대외비)'라는 제목이 달린 글은 노조 파업 상황에 대한 문건이다. '조직원'들과 함께 돌려보던 문건과 세미나 자료는 그대로 그의 생각과 느낌이었다. 그에게 기억은 어렸을 적 다락방에서 꺼내보았던 연둣빛 명주 천 같다.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다가갈 수 없다고 말한다.
왜 문학을 업으로 삼았는가. 아홉 살 때 이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숙명이었다는 그는 "문학은 자기 앞에 닥치는 것이고 힘을 다해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론가인 그가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문학이 반드시 일구어야 할 말은 이런 것이다. "어둠에서 빛을 나르는 말, 사람을 자기의 기원으로 돌려주는 말, 신을 부르는 말."
/김지영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