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 지음, 안-바롱 옥성, 안인성 옮김·현암사 발행8,500원"사막에서는 하루 2.5리터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구원이란 소박한 것, 자급자족, 예술, 침묵, 그리고 활기를 내포한 느림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과잉과 범람, 폭주로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테오도르 모노(1902∼2000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사막의 순례자'는 지질학과 고고학, 해양학, 생물학을 넘나 든 과학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반전운동가인 모노가 만년에 쓴 '절대의 구도자'(1997) 중 명상록 부분을 발췌한 책이다. 그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 속에서 명상과 느림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각박한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권유하는 데서 그치게 마련인 많은 명상 서적이나 게으름 찬양서와는 다르다.
책은 자전적 연대기를 중심으로 '연관되기' '벗어나기' '저항하기' 등 세 부분으로 엮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란 과정,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에 대한 비판, 대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뎅과의 정신적 교류와 평생에 걸친 아프리카 사막 탐험에 대한 단상 등이 이어진다.
그는 낮에는 모래 위의 발걸음 소리를 음악 삼아 낙타 위에서 사막을 횡단하고, 밤에는 염소 가죽으로 묶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거나 글을 썼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무대는 세계였다. 그는 사막에서 식물 곤충 돌 채집과 더불어 종족차별 반대, 알제리 지지, 반전반핵 운동에 참여했다.
모노는 세계의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 '피 속에 우주의 한 조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 세계의 특권적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생태계의 식민주의자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은 인간 없이도 살 수 있고 나아가서는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막을 건너며 얻은 사유를 통해 그는 '농부와 예술가, 사색가들로 이루어지고, 전투병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고 그 꿈을 위해 싸웠다. 해마다 반핵 침묵 시위에 참가했으며, "어떤 형태로든 한 사람의 정신이라도 움직이는 데 성공한다면 투쟁은 헛되지 않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의 삶을 보냈다.
종교, 정치, 환경보호, 자유, 유목민의 삶과 사막의 생태계에 걸친 주제가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막에서의 단순한 삶, 그 속에서 얻은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큰 안목으로 담아 냈다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타협을 모르는 완강한 어투지만 완강함 뒤에는 풀잎 하나에서도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는 섬세한 시인의 마음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가난을 긍정하고, 전쟁과 소비의 논리에서 벗어나라"는 저자의 주문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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