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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송금사건이 첫 단추

입력
200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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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송금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과 해법이 양 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대립과 분열의 뿌리가 다시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사건을 두고 '국기문란'과 '통치행위'로 맞서 있으니 극과 극이 바로 이럴 때 쓸 말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양비나 양시적 관점을 대입할 생각은 없다. 대통령의 위법사실이 드러난 문제의 성격이 명료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진실을 규명해 사후처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처리방법을 놓고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특검제와 국회증언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이 가운데쯤에서 양쪽을 모두 걸치는 모호한 입장에 서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집권기간 자신들의 정치적 도덕성을 옹호해야만 할 입장이고,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퇴로를 최대한 보호·보장하려는 도의적 정서적 본능도 갖고 있을 것이다.

정치산술 상 한나라당에게 이 사건은 대선 이후 상실했던 정치적 발언력과 입지를 일거에 만회한 소재이니 간단히 물러설 이유가 없다. 새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특검수사 등을 통해 정국주도권을 노리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공세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또 노 당선자로서는 사건을 잘만 처리하면 가장 어려운 전 정권의 부담을 털어내고 일정부분 과거를 단절했다는 대국민 과시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당선자측에서 문제를 먼저 터뜨린 후 청와대를 향해 '고백'의 압력을 가했고, 국회의 결정을 전제로 특검수사도 부정하지 않는 한 이유이다.

송금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편차 뒤에는 또 진보와 보수, 대북 강온 양론, DJ에 대한 감정, 지역정서의 문제 등도 복합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웬만한 정치적 사건들에는 언제나 이런 요소들이 크게 작게 깔려 있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그 발상과 위법성의 범위가 너무도 대담하고 심각한 데다 은폐와 기만에 대한 국민적 충격이 크기 때문에 여론의 흐름이 악화쪽으로 일반화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처리가 잘못될 경우 정치권과 사회 전체가 다시 혼란과 분열의 기제 속으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겪었던 극단의 분열상이 불과 몇 달 만에 재생하는 양상이 될 수 있다. 노 당선자를 만들어 낸 선거결과는 앞으로 새로운 사회변혁의 전환점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여기서 분열의 치유와 새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송금사건은 이를 위한 첫 착점을 흐트려 놓을지도 모를 길에 올라 있다.

이것 말고도 가파른 도정을 예고하는 요소들은 또 있다. 새 정권 앞에는 불과 1년 여 후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정권이 새로 출범한 이후 최단기간 내 총선을 치러야 하는 기록일 것 같다.

각 분야 개혁 드라이브의 이행이 곡절을 부르게도 돼 있지만 선거를 향한 정치권의 대치와 경쟁은 몇 달만 지나면 바로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차기총선의 다수당에게 총리를 넘겨주겠다는 노 당선자의 말은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배수진의 독려였다. 한쪽이 격렬하면 반대쪽의 같은 응전이 수반되는 게 여야 정치의 공학이다.

여야 관계는 당선 초기 엿보이던 상생과 협력보다는 생존의 치열한 상극관계로 얼마든지 되돌아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초는 대북 송금 사건의 처리방향에 달려있다. 국민동의가 불완전 상태로 다루어질 경우 새 정부의 운신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당선자가 추구할 북한 정책만 해도 어떻게 어디서부터 정책착수가 가능할 수 있을지 가늠이 어렵다. 국민적 합의는커녕 새로 시도하겠다던 초당적 여야협의체도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책임감과 현실감을 갖고 직시해야 할 문제이다.

조 재 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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