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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5> 창동 미술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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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5> 창동 미술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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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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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다 돼 가는데 MT 한번 못갔네요. 하다 못해 단체로 노래방이라도 한번 가야 되는데…. 서로들 작업이 바쁘니, 그런 여유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요." 서울 도봉구 창동 601의 107번지. 은행과 주유소, 초등학교와 교회와 연립주택이 줄줄이 이어지는 번잡한 길가에 겉모습으로는 도대체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창동 미술 스튜디오'라는 입간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한국 미술판의 젊은 작가 14명의 집단 창작촌이라는 걸 알게 된다.문을 열고 들어서서 작업실과 전시실을 하나둘 둘러보자 비로소 스튜디오의 열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려 있거나 벽에 기대놓은 작업 중인 그림, 벽면 선반을 가득 채운 붓과 나이프와 물감통, 설치작품 제작을 위해 들여놓은 DVD 플레이어와 TV 모니터, 첼로….

창동미술스튜디오는 유망한 30·40대 미술 작가들의 창작 여건을 돕기 위해 문화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이 30억원을 지원해 지난해 6월 개관한 집단 창작촌이다. 452평의 2층 건물에 14∼22평짜리 작업실 14개, 전시실과 옥외작업장 등을 갖췄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전업 작가들이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쌈지창작스튜디오, 경안창작스튜디오, 가나아틀리에 등 기업·화랑이 지원하는 창작촌이 있긴 했지만 창동미술스튜디오는 국가 차원에서 최초로 설립된 진일보한 레지던스(residence)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기 입주 작가들은 모두 14명. 공모로 선정된 33∼49세의 한국화 작가 3명, 서양화 6명, 설치 4명, 조각 1명 이다. 이들은 월 5만원의 관리비를 내고 1년간 스튜디오를 사용한다.

14명 중 9명의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6년간 경기 하남시의 농가 창고를 작업실로 쓰다가 입주했다는 한국화가 임현락(39)씨의 2층 작업실에는 천장 높이인 7m가 넘는 대형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임씨는 "입주 작가마다 장르와 작업 스케줄이 다르다. 하지만 인접 장르에서 얻는 정보가 많다"고 말했다. 판화 작가 김란희(43)씨는 "입주할 때는 스파크가 일 정도로 술 많이 먹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다들 바빠서 MT 한번 못 갔다"며 "작업실을 비우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 경쟁심이 절로 생긴다"고 웃었다. 김씨도 이전까지의 작업실에서는 불가능했던 판화에 회화를 덧그리는 대형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바구니 작가'로 알려진 서양화가 정란숙(47)씨도 "구상 작가들끼리는 스케치 여행을 같이 다닌다거나 해서 항상 '우리'라는 걸 의식했는데 막상 창동스튜디오에 입주하고 나니 너무들 작품세계가 달라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장르 작가들의 기법, 재료 사용 등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14명의 작가들은 입주 당시 각각 작품을 내 오프닝 전시회를 열고, 작업실도 한동안 일반인에 개방해 보여 줬다. '창동스튜디오 미술작가 협의회'(창미협)를 자치기구로 만들어 매월 둘째 토요일 총회를 열고 밤새워 스튜디오 운영 방안 등을 토론한다.

창동미술스튜디오는 이처럼 미술인들을 고립된 개개인의 작업장에서 끌어 내 경험의 공유와 토론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타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입주 작가들은 창동미술스튜디오가 단순한 작업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미술계의 새로운 인프라 구축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장자인 서양화가 김종학(49)씨는 "그간 정부 차원의 미술 지원이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는 점에서 창동미술스튜디오는 일단 사업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 같은 기회가 좀 더 많은 작가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치 작가 양만기(39)씨는 "당초 운영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던 입주 작가들의 릴레이 전시회, 외국의 집단창작 스튜디오와의 연계와 교류 등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불만은 1년으로 제한된 입주 기간이다. 프랑스 파리의 국제예술공동체 시테(cite)에 입주해 작업한 경험이 있는 서양화가 박은선(41)씨는 "건물 신축 이후 정리 기간과 퇴소 기간 등을 빼고 나면 우리 1기 작가들의 입주 기간은 사실상 8개월 정도"라며 "1년에 한해 연장할 수 있다는 스튜디오 운영 규칙도 사실상 사문화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입주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책임질 운영 큐레이터가 없다는 것도 이들의 아쉬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이런 1기 작가들의 지적에 대해 "내년 10월 경기 고양시에 제2스튜디오(22∼24명 입주)를 설립하고, 스튜디오의 전담 관리자를 둔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1주일에 한번이나 외출할까, 작업실에 박혀 지낸다는 박은선씨는 "창동미술스튜디오 운영이 본 궤도에 오를 경우, 창미협 작가들이 한국 미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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