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2월20일 미국인 선교사 호레이스 호튼 언더우드가 61세로 작고했다. 한국 이름이 원한경인 그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언더우드의 한국 이름은 원두우(元杜尤)다.언더우드 부자는 개화기와 일제하 한국인들에게 짙은 우애를 지녔던 많지 않은 미국인들에 속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맡은 일차적 일감은 물론 선교였다. 원두우는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 기독교서회(基督敎書會)를 창립하는 한편, 성서번역위원회를 만들어 성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사업을 주관했다. 원한경 역시 한국 최초의 사경회(査經會: 성서 공부 모임)를 자기 집에 꾸려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전도 활동을 하도록 북돋웠다.
거기서 끝났다면, 오늘날 한국인들이 이들의 이름을 특별히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교육을 포함한 문화 전반으로 선교 사업을 확대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의 근대 고등교육사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겼으니, 원두우가 세우고 원한경이 3대 교장을 지낸 연희전문학교는 해방 뒤 연희대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통합됨으로써 오늘날 한국의 가장 명망 있는 사립 고등교육 기관 가운데 하나로 발전했다.
원한경은 연희전문학교 전신인 조선신학교 시절부터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편,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조선 지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이 학회의 저널에 한국과 관련된 논문을 여럿 발표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터진 뒤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가, 8·15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미군정청 고문, 미소공동위원회 고문을 지냈다. 저서로 '한국근대 교육'이 있고, '한국 관련 서양 문헌 목록'을 편집했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