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이야? 적군이야?"장난스럽게 먼저 이 말부터 한다. 코미디언은 웃음 속에 칼을 품는다고 했던가. 세상 사람을 적, 아니면 아군으로 보려는 심형래(45). 유쾌한 떠벌이는 어느날부터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잊혀진 존재처럼 지냈다.
'용가리'(1999년)는 그에게 상처이자 약이었다. '신지식인 1호'라는 감투가 무슨 소용인가. 세상은, 특히 영화계는 여전히 그를 '바보 영구' 로 보았고, '용가리'가 기대에 못 미치자 거 보란 듯이 조소를 쏟아냈다. 세상물정 모르고 덤벼든 수출과 국내 배급에 얽혀 거의 사기꾼 취급까지 받았다.
그가 3년 반 만에 '이무기'란 괴물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용이 되려는 그 괴물로 '디 워'(D―War, D는 Dragon의 약자)란 또 하나의 초대형 SF 액션물을 만들고 있다. 캐릭터를 완성해 모델링까지 마쳤고 4월 LA에서 실사 촬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디―워'는 500년의 시간, 조선과 미국이란 공간을 넘나들며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사악한 이무기 다크와 여의주의 환생인 연인 세라의 대결을 그린다. "왜 맨날 이런 선악대결이냐고? 세계적으로 가장 잘 통하는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공룡이나 미키마우스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 이무기란 괴물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걸 SF 영화로 살려내면 우리 콘텐츠 하나를 갖게 된다. "
'용가리' 때처럼 요란하지 않을 뿐이지 심형래의 '디―워'는 엄청나다. 제작비는 대략 180억원. 캐릭터 개발과 모델링 작업에 이미 30% 이상을 투입했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6억원을 들여 모든 콘티(촬영 대본)를 미리 동영상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점검한다. '용가리'에서 아킬레스건이었던 드라마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할리우드 '스타트랙'의 보조 작가 마이클 걸보시에게 각색을 맡겼다.
출연 배우도 만만찮다. 세라 역을 위해 '피아노' '엑스맨'의 안나 파킨스, '너스 베티'의 제니 웨이드 등과 협의하고 있으며 스콧 글렌, 에릭 로버츠, 레이 리오타 같은 낯익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출연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배우인 캐릭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용가리'는 움직임이 힘들어 표현하고자 했던 연기를 시킬 수 없었다. 걸음마 수준의 아이가 펄펄 날아 다니는 청년으로 자란 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심형래는 짤막한 데모필름을 공개했다. 거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둠'을 완전히 걷어냈다. 대낮같이 밝은 화면에 나타난 괴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자유롭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피부도 무척 섬세했다. 그가 말한 100배까지는 아니더라도 10배는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다. 말이 앞섰던 '용가리'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이다."
그의 목표는 수출 10억 달러, 미국 박스오피스 1위. 콜럼비아, MGM 등 미국 메이저와 일본 도쿄 디즈니가 데모필름만 보고 벌써부터 '최우선 협상'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28일오후 4시에는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일반인을 위한 투자 설명회도 갖는다. "제작비 조달 때문이 아니다. 반대자도 많지만 아직 열렬한 지지자도 많다.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다. '용가리'를 용두사미로 본 사람들이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심형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년 2월 영화로 말하겠다. 5년 안에 미국 SF영화를 따라잡겠다고 한 내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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