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 '기묘한 이야기'는 이야기로 주린 배를 양껏 채워주려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일본영화다. 오싹한 호러, 웃기는 시대극, 감미로운 멜로를 한 접시에 모듬으로 차려냈다. 일본 후지TV에서 1990년부터 10년 동안 방영한 '기묘한 이야기'를 10주년 기념으로 인기 있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묶어 영화화했다.심야의 기차역에 폭우가 쏟아진다. 오갈 데 없이 마냥 비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 난감해 한다. 이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다음 이야기들로 이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첫 얘기는 '눈속의 하룻밤'(감독 오치아이 마사유키). 수학여행이나 MT 때 듣던 공포담의 변주다. 폭설이 내리는 산 속에 비행기가 추락, 한줌의 사람들만 겨우 살아 남는다. 부상자를 멘 채 눈길을 헤치며 산장을 찾던 이들은 지친 나머지 굴을 파서 부상자를 눕혀두고 길을 떠난다. 산장을 찾은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산장을 찾은 사람들은 부상자를 찾으러 길을 되짚지만 오히려 실수로 죽이고 만다. 이후 살아남은 자들은 무거운 죄의식에 잠을 뒤채고 악몽에 시달리며 하나 둘 죽어간다. 죄의식이 악몽이 되고, 악몽이 곧 현실이 된다는 내용이 너무나 으스스하다.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 남을까. 정교하게 잘 짠 공포물로, 뜯어보면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두번째는 '사무라이의 핸드폰'(감독 스즈키 마사유키). 역사를 필연의 연속으로 보는 이들에겐 뒤통수를 칠 파격 코미디다. 1701년 아코번(赤穗藩)의 낭인 47명이 억울하게 죽은 주군을 위해 복수한 유명한 사건을 뒤집었다. 주인공 오이시는 아코번의 오른팔로 사건을 주도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선 틈만 나면 정부의 꽁무니를 쫓는 한심한 인생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길가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으면서부터 역사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세 번째 이야기 '결혼가상체험'도 기발하다. '가상 결혼체험을 통해 천생연분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살아보지 않고도 제 짝을 만날 수 있으니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 좋을지도 모르겠다. '러브레터'의 카시와바라 다카시가 들려주는 결혼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신선하다. 21일 개봉. 18세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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