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는 처음 불이 난 1079호 전동차가 아니라 불이 옮겨 붙은 1080호에서 더 많았다. 1080호는 화재로 연기 자욱한 역사에 진입해 미련스럽게도 불이 옮겨 붙을 때까지 문을 닫은 채 열차를 세워둠으로써 희생자를 키웠다. 왜 그랬을까. 모든 의혹은 1080호에 집중된다.먼저 중앙로역 화재 발생 보고를 받은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이 당시 대구역에 정차해있던 1080호 전동차의 운행을 중지시킬 수 없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령실이 "화재 발생"을 보고 받은 시각은 이미 역사에 연기가 자욱하던 오전9시55분. 1080호가 대구역을 출발한 것은 30초 후이고 중앙로역에 도착한 것은 1분45초가 지나서 였다. 시간상으로는 1080호의 중앙로역 진입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사령실측 해명은 석연치 않다. "화재보고를 받고 1079호 기관사를 호출하느라 1080호의 출발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가 "주의 운전을 지시했다. 이후엔 기관사 책임"이라고 말을 바꿨다. 1080호 기관사 최상열(39)씨는 "주의지시는 받았지만 일상적인 지시인줄 알았다"며 책임을 다시 사령실로 떠넘겼다.
사고 순간이 녹화된 CCTV는 그 순간 사령실은 '주의'가 아니라 '정지' 지시를, 기관사는 불타는 역사를 보고 즉각 정지하거나 무정차 통과했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안전불감증'을 넘어서는 '무모함'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대목이다.
의문은 또 꼬리를 문다. 9시56분45초 중앙로역에 도착한 1080호 전동차의 문은 자동으로 열렸으나 이미 가스가 역구내에 상당히 퍼져있었고 9시57분 기관사 최씨는 문을 다시 닫았다. 최씨는 사령실과 교신을 시도, '즉각 발차'를 지시 받았지만 단전되면서 전동차의 발이 묶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하철공사측도 "역의 전원이 차단되면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전동차는 정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 설비 전문가들은 "차량 주행용전원은 역내 전원과는 별개 시스템"이라며 "주행용 전원이 차단되기 위해서는 섭씨 600도 이상의 고열에 케이블이 녹아야 하지만 당시 상황이 그랬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전력이 화재에 의한 합선 등으로 끊겼는지 전차선로의 이상발생을 감지하고 '보호계전기'작동으로 자동 단전됐는지 여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또다른 의혹은 출입문을 열었나, 열었다면 언제인가이다. 최씨는 9시59분 휴대전화로 사령실과 통화, "승객을 전원 대피시켜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승객들은 10시10분께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고 주장, 10여분의 공백을 설명할 길이 없다. 더구나 최씨는 "수동으로 문을 열고 확인까지 했다"고 경찰조사에서 주장했지만 불에 탄 전동차는 6량 중 5량의 문이 닫힌채여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에 대해 지하철공사측은 "출입문 제어선이 훼손되면 사후 문이 닫힐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하철 설비 전문가들은 "상식 이하의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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