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방전문가들은 대형 화재 참사를 빚은 대구지하철을 비롯,전 지하철이 내장재 기준 미비, 안전시설 부재 등으로 소방안전의 사각지대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불에 타기 쉬운 내장재
지하철 전동차는 대부분 철제로 이뤄져 불에 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동차 바닥과 벽은 대부분 불에 탈 경우 심한 유독가스를 내뿜는 석유화학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벽과 천장을 둘러싸고 있는 FRP, 의자 쿠션의 재질로 사용되는 우레탄폼, 바닥재로 쓰이는 염화비닐수지 등의 석유화학 재질은 난연 처리되긴 하지만 대형 화재에는 속수무책이다. 윤명오(尹明悟) 서울시립대 교수는 "난연 처리된 제품들이 소형 화재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대형 화재 때는 다 타게 된다"며 "특히 의자 쿠션으로 쓰이는 폴리우레탄폼의 경우 난연 처리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전동차 내장재의 난연성 기준이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도 문제다. 건교부의 철도차량 화재 안전기준 자체가 1998년에야 제정됐을 뿐 아니라 내장재의 구체적 난연성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불에 타기 어려운 재질로 할 수 있다' 등으로만 규정돼있다. 한국산업기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의 경우 소재를 불연성이나 최고급 난연성 제품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난연 2등급 수준의 제품을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크릴 소재인 광고판은 아예 난연 처리조차 되지 않아 불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안전시설 부재
불이 났을 경우 대합실에는 스프링클러로 어느 정도 진화가 가능하지만, 승강장이나 전동차는 속수무책이다. 객차 내에 설치된 소화기 2개와 창문 유리를 깰 수 있는 비상탈출용 망치 정도가 고작. 화재를 감지하는 센서는 없고 정전시 탈출방향을 알려주는 야광안내판은 연기가 차면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전동차내 물 사용이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열차 내에서도 소화가스를 통해 불꽃을 꺼뜨리는 등 새로운 화재진압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유독가스를 빼내는 배연설비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 화재가 나면 비상 배연기가 가동돼 유독가스를 강제 배출토록 하지만 용량이 적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법규 미비와 형식적인 안전교육
이렇게 지하철 소방안전시설이 부족한 것은 지하철 등에 관한 소방법규 자체가 몇 줄에 불과하기 때문. 더구나 차량 내부시설은 아예 소방법에서 제외된 상태다. 현재 소방법은 고정설비에만 적용되며 비행기, 선박, 열차, 차량 등에는 적용이 안된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그동안 소방법에서 제외돼 있었기 때문에 전동차의 화재 안전에 관한 문제점 자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며 "하루 속히 소방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재를 위한 안전점검 및 승객, 역무원에 대한 교육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지하철 운행 당국은 지금까지 단전, 누전 등으로 인한 사고에 주안점을 두고 비상대책을 마련했지만 대형 화재에 관한 대책은 사실상 백지 상태였다. 이영재(李榮宰) 동국대 교수는 "경고 신호체계, 감시 체계, 대피 방법 등 재난대응 시스템도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며 "시설에서 관련 법규에 이르기까지 대량 수송 분야의 체계적인 안전 보안체계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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