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는 허술한 안전·방호시스템과 안이한 상황인식이 부른 '총체적 인재(人災)'였다.한 정신질환자가 동반 자살을 노리고 던진 불 붙은 우유통은 대구지하철의 비상식적인 안전시스템과 무용지물인 화재방호시스템, 직원들의 안이한 상황인식과 미숙한 대처라는 '구멍'을타고 타올라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된, 상상을 초월한 참사로 이어졌다.
탈출로 막은 안전시스템
화재 발생시 자동으로 전력을 차단하는 안전시스템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희생자들을 오히려 화마(火魔)에 옭아맸다. 안전시스템은 전동차 1079호에 불이 나자 전력을 차단, 마주오던 1080호의 운행을 중단시킨 것은 물론 환기시설, 비상등마저 꺼버렸다.
문 닫힌 1080호 객차에 갇혔다가 가까스로 나온 희생자들은 역 구내에 가득 찬 연기와 유독가스에 파묻혀 비상등의 안내도 없이 사방을 헤맬 수 밖에 없었다. 사고가 난 지하3층에서 지상까지는 고작 2분 거리. 사망자는 지하2층 개찰대 부근에서 특히 많이 발견됐다. 한 119구조대원은 "지하2층에서 발견된 사상자 대부분은 출구를 찾다 질식해 쓰러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종합상황실을 거쳐야만 하는 통신체계도 문제였다. 대구지하철공사가 운영중인 전동차는 모두 종합운영사령실로부터만 무선지령을 받을 수 있다. 당시 1079호와 1080호의 기관사가 직접 무선통신을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무용지물 화재방호시스템
불이 나자 지하2층의 스프링클러는 작동했지만 지하3층 전동차에 붙은 불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스프링클러 등의 자동소화시설이 없는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화재가 발생하면 전동차 자체의 소화방재능력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 하지만 전동차에는 객차1량당 2개의 소형소화기가 비치돼 있을 뿐이다. 시너나 휘발유 등이 타며 폭발하듯 번지는 불길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방화 셔터도 희생을 키웠다. 지하1층 상가에 내려진 방화셔터는 화재의 확산은 막았지만 어둠 속에서 헤매던 승객들의 탈출도 함께 차단했다. 뜨거운 불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연기와 유독가스. 지하시설 임에도 화재시 연기와 유독가스를 강제 배기해야 하는 공조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후 3∼4시간이 지나도록 역구내를 가득 메운 연기는 구조대의 접근을 막았다.
안이한 상황인식과 미숙한 대처
승강장에서 지상까지는 성인의 경우 한번 숨을 참고 뛰면 나올 수 있는 거리다. 소방서측은 "암흑 속이지만 초기에 만이라도 역구내 지리를 잘 아는 직원이 조직적으로 승객을 안내했다면 많은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직원들이 위기상황 대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충분히 받았더라면 이번처럼 우왕좌왕하며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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