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의 칠흑 같은 사고현장에는 꼬마전구 몇 개만이 덩그러니 켜져 있었다. 불에 그을린 전동차 주위로 타버린 시신들이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굳게 닫힌 전동차 출입문 안에는 이리저리 엉켜 널브러진 시신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했다. 대구서부소방서 119구조대 김진근 대장은 "많은 사고현장을 다녀봤지만 이토록 참혹했던 적이 없었다"며 몸서리를 쳤다.이날 오후 5시18분 현장지휘소 바로 옆 지하계단을 내딛는 순간 화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쳐왔다. 좁은 계단을 따라 전동차가 있는 지하3층으로 가는 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천장이 뜯겨져 나가 길이 1m가 넘는 철판들이 머리에 부딪치려 했고 엿가락처럼 휘어진 전기 배선들은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바닥은 소방차가 뿌린 물로 흥건히 젖어 질척거렸다. 온통 검게 그을린 벽에 붙어있는 안내표지판도 모두 타버려 사고 몇 시간 후에도 출구를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처음 화재가 발생한 1079호 전동차(기관사 최정환·34)는 바닥과 천장, 의자 등 내부가 모두 타버린 채 쇳덩어리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출입문 유리는 물론, 광고판도 산산조각이 나 파편이 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었고 그 사이로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것이 있었다. 검게 타버린 시신들이었다. 손전등을 켠 채 길을 안내하던 한 소방관은 "열차 내부는 인화성 물질의 집합체"라며 "모두가 화학섬유 물질이어서 불이 붙으면 급격하게 연소가 진행돼 삽시간에 타버린다"고 말했다.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던 상행선 전동차의 몰골은 더욱 처참했다. 50㎝정도 간격으로 바짝 붙어있다 불이 옮겨 붙어 '날벼락'을 맞은 이 전동차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뒤쪽으로 객실 2량에는 광목으로 덮인 50여구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광목 틈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시신들의 모습은 뼈만 남은 채 오그라들어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전동차 역시 형체만 남아있을 뿐 어느 곳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다. 마지막 객실 앞쪽으로는 역사의 타일 벽이 뜯겨지고 전기배선과 천장이 내려앉아 접근할 수도 없었다. 뒤쪽 2번째 객실의 뜯겨진 문짝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119구조대원이 뒤에서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그는 "사체훼손의 우려가 있어 들어가면 안된다"며 "전동차를 견인한 후 본격적인 신원확인 작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동차 옆에서 5분 여가 지났을까. 식지 않은 열기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유독성 가스 때문에 숨쉬기조차 부담스러웠다. 출구를 찾아 나가는 길 역시 '미로'였다. 폭 2m에 불과한 계단은 평상시에도 승객들이 몰리면 압사를 면하기 힘들 정도로 좁아 피해를 키웠을 것이라는 지적에 수긍이 갔다.
상행선 전동차에 갇혀있다 가까스로 여자친구 손을 붙잡고 빠져 나왔다는 이진영(19·아르바이트·대구 동구 신기동)군은 "계단을 뛰어오를 때 다른 승객에 부딪쳐 넘어질 뻔했다"며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 중앙로역의 지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대구지하철 사고현장에는 119구조대원들이 온몸에 검댕이를 묻힌 채 복구작업에 비지땀을 흘렸고 이동통신사들은 실종자들이 마지막으로 전화한 기지국을 추적, 신원확인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희생이 치러진 뒤였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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