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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 反戰따로 실리따로

입력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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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는 걸프 지역 아랍국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기회 있을 때마다 "이슬람 형제국인 이라크를 침공하지 말라"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지만 한편으론 미국, 영국 등 '침공 세력'에게 공격 거점과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8일 걸프 연안 아랍국들의 뿌리깊은 대미 군사 의존도를 지적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들 국가들은 미군이 무엇을 요구하든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역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뿌리깊은 밀월 관계

FT는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요르단 등 이라크와 인접한 걸프 왕국들이 미국과의 각종 군사협력 조약 체결에 줄을 서고 있다고 전했다.

풍부한 오일 달러를 밑천으로 지난 수십 년간 미군의 군사장비와 국방 노하우에 기대온 결과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군사적 의존 상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런던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걸프 연안국은 국방 및 치안 예산으로 1995년 이래 2,5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대부분이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고가의 군사장비 유지 및 운영에 쓰이는 이 돈은 이들 국가의 한해 예산의 30%, 국내총생산의 15%에 이르는 수치다.

군사적 의존의 결과는 어쩔 수 없는 군사 협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군은 현재 쿠웨이트 등 7개국에서 군사시설과 영공 통과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5개국에 이라크전을 위한 전투 장비를 비축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바레인에는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오만에는 오만 정부가 2001년 미국에 주문한 F―16 전투기 배치를 명분으로 새 공군기지가 건설중이다. 카타르는 이미 미군의 전세계 해외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 동안 강한 반미 입장을 보여온 UAE조차 중동 지역 내 최장 활주로를 지닌 공군기지와 군항 등 5개 군사기지에 미군 1,600명이 배치돼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이 실제 사용중인 이 지역의 군사시설 규모가 걸프 각국의 공식 발표 수준을 훨씬 뛰어 넘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 조약에는 미국―사우디 간의 '정규군 및 보안요원 훈련 협정' 같은 정식 조약도 있지만 대부분이 '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한시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진다. 광범위한 반미 정서를 고려, 왕가 수뇌부가 군사 관계 공식화를 꺼리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와 UAE가 "유엔 결의안 없는 이라크전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동상이몽 회원국 회담

이러한 현실은 15,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외무장관 회담에 그대로 반영됐다.

각국 대표들은 결의를 통해 "이라크의 안전을 위협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지원과 시설도 제공하지 말 것"을 촉구했으나 정작 이라크 위기와 관련한 역내 국가들의 마지막 외교노력이 될 아랍정상회의 일정을 합의하는 데는 실패했다. 침공국인 미국은 거명조차 않은 데다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 미군 병력을 수용하고 있는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 방안도 언급하지 않아 결국 회원국 간의 심각한 견해차만 확인했다는 평가다.

FT는 "이라크전을 맞아 미국에 군사적 지원을 거부할 걸프 연안국이 있으리라고 믿는 아랍국은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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