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2000년 8월 북한측과 합의한 경협사업의 세부내용을 16일 공개하고, 그 대가로 5억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정 회장은 2000년 6월에 북한에 송금한 5억달러는 현대의 대북 경협사업 대가임을 분명히 하고, 다만 결과적으로 정상회담에 기여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 회장은 특히 현대가 대북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했고, 북한측 요청으로 정상회담 직전 5억달러를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산업은행의 4,000억원 대출과정, 5억 달러 송금경로 등 핵심적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2000년 8월 합의내용
현대가 2000년 8월 북한과 합의했다고 밝힌 경협사업 내역은 통신, 전력, 공단건설, 관광, 비행장·댐 건설 등 북한의 기간산업 개발·운영을 총망라하는 방대한 규모다.
이와 관련 정 회장은 "1998년 금강산 사업을 필두로 경협사업을 시작했지만 99년부터는 북측의 사회간접자본·기간산업 건설이라는 보다 원대한 사업을 북측과 협의하기 시작해, 2000년 초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며 "2000년 5월 대북사업 전반에 잠정 합의한 이후 이를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8월 대북사업 합의서가 북측 고위층에 보고되도록 했고, 우리 정부 당국자도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대가 밝힌 합의내용은 금강산사업 공단사업 철도사업 통신사업 전력사업 통천비행장 금강산 수자원 이용 임진강댐 주요 명승지 종합관광사업 기타사업 등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금강산사업과 관련해서는 해금강 남단에서 원산까지를 세계적 종합관광단지로 개발·운영하고, 이를 위해 금강산 지역을 특구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공단사업에 대해서는 개성지역에 총 2,000만평 규모 공단(1,200만평은 배후신도시)을 조성·분양하기로 했으며, 통천지역에는 관광기념품·농수산물 등을 생산·가공하기 위한 경공업단지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또 경의선 연결 복선화, 경원선·금강산선·동해북부선 연결·운영과 함께 철도기지 운영사업 등 철도사업에도 합의했다. 특히 남북 당국간에도 아직 합의하지 못한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중국횡단철도(TCR) 연계사업에도 합의한 부분이 주목된다.
이처럼 현대가 북한과 합의한 사업은 구체적인 비즈니스 계약이라기 보다 선언적 차원의 합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실체가 불분명하다. 특히 남북간 합의와 남한 정부의 예산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민간기업이 수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 비밀송금 경위
정 회장은 5억달러 대북 송금과 관련, 5억달러는 2000년 8월에 합의한 경협사업 대가고, 금액결정과정에서 정부와의 협의가 없었다는 점만 분명히 했을 뿐 송금경로와 송금시기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또 2억달러 송금과정에서의 국정원의 편의제공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고, 현대건설·현대전자의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합의서 체결전 송금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서는 "북쪽이 정식합의서 체결전 송금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라며 "송금이 늦어져 정상회담이 연기됐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대답했다. 정회장은 이어 "5억달러 결정은 2000년 5월께 북쪽과 최종 합의한 것으로 정부는 금액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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