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전 몰이가 사면초가에 빠졌다.우선 14일(한국시간 15일 새벽) 유엔 무기사찰단이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관련 2차 보고서가 미국의 기대만큼 전쟁의 명분을 정당화해 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의혹이 해소되지도 않았다"는 애매한 보고는 유엔에서 미국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무기사찰단 보고에 이어 계속된 안보리 이사국들의 토론에서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등 상당수 국가가 "지금 당장 전쟁으로 가는 것은 부당하다. 사찰 기한을 연장해 이라크의 협조 여부 등을 더 살펴봐야 한다"며 강력하게 저항하고 나섰다.
이날 미국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다시피한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 등의 연설을 듣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미국의 곤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15일 하루 종일 전 세계에서 계속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도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광'으로 비난받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렇다고 전쟁을 마냥 늦출 수도 없는 입장이다.
9·11 테러의 악몽을 잊지 않는 미국에서는 여전히 이라크전 지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기존 입장을 바꿔 전쟁을 늦출 경우 국내적으로 지지도가 떨어질 수 있고 4월 이후에는 전장이 될 걸프 지역의 기온이 너무 높아져 작전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파월 장관이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수 주 안에 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밝힌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유연해 보이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백악관의 지니 메이모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무력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아직도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며 그것은 사담 후세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라크 문제는 유엔에서 계속 다뤄야 한다"면서 무기 사찰 연장 제안을 수용하는 등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미국의 주전론이 약화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시는 무기사찰단의 2차 보고 직후 연방수사국(FBI)을 방문, "우리는 전쟁 중이며 전쟁은 지금도 계속 중"이라며 "내가 테러와의 전쟁을 말할 때는 알 카에다뿐 아니라 이라크도 포함해 얘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유엔 결의를 거치지 않는 독자적 군사행동을 주장하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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