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학파의 거두였던 학봉 김성일 종가의 13대 종손 김용환씨. 일제 시대에 살았던 김씨는 종가의 재산을 노름과 기생질로 탕진해 버리고 무남독녀 외동딸의 혼수비용까지 팔아먹은 파락호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그러나 훗날 그가 날려 버린 것으로 알려진 재산은 만주의 독립군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난봉꾼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학봉 종가에서는 현재까지 24명이 독립유공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17, 18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MBC 다큐멘터리 '한국의 종가'는 퇴계 학봉 운악 고산 등 한국의 대표적 명문 종가를 취재, 종가의 면면들을 소개한다. 오늘날 혈연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진원지라고 지목 받는 종가. 제작진은 이런 곱지 않은 시각을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사라져가는 종가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우선 순위를 뒀다. 지역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였던 명문 종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의무만 남고 권리는 없어져 쇠락의 위기에 처한 오늘날 종가의 모습 등을 담았다.
퇴계 이황의 직계 종손들이 500년 동안 지켜온 퇴계 종가. 4년 전 종부가 세상을 떠난 퇴계 종가의 최대 관심사는 17대 종손 이치억(29)씨 장가 보내기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1년에 22 차례나 제사를 지내야 해 끊임없이 접빈객을 해야 하는 종부를 맞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종가의 현주소는 그의 결혼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8일 방송되는 2부에서는 재령 이씨 운악 이함 선생의 17대 종손인 TG(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을 통해 효의 의미를 깨우친다. 이 회장은 미국 유학 3년 8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고, 지난 추석에 부친이 돌아가신 뒤 현재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추모를 실천하고 있다. 또 윤선도를 배출한 전남 해남군 연동마을의 고산 종가를 통해 종가의 진정한 버팀목이었던 종부의 역할을 살펴본다.
윤영관 PD는 "이제 2·3대가 더 지나면 종가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며 "잊혀져 가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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