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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19·끝>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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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19·끝> 진안

입력
200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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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동 경남 거창군, 서 전주시, 남 임실·장수군, 북 충남 금산군면적 789.94㎢(농경지 13.3%, 임야 80%)

인구 3만 439명(1만 1,275세대)

행정구역 1개읍 10개면

예산 1,610억원(2003년)

산업분포 농·임업 80%, 광·공업 3%, 서비스업 17%

특산물 인삼 더덕 표고버섯 고추 등 고랭지 농산물

문화재 금당사 괘불탱화(보물 1266호) 평지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214호) 매사냥(무형문화재 20호)

주요 관광지 마이산과 탑사, 운일암 반일암, 죽도, 풍혈냉천, 월평계곡, 백운동 계곡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용담댐 하류 수몰민 이주 마을.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친 주민들 10여 명이 마을 어귀의 한 집으로 모여 들었다. 서울에서 기자가 내려간다고 하니 하나 둘씩 찾아 온 것. 이틀 뒤가 정월 대보름이어서 사위는 휘영청 밝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섣달 그믐이었다. 모처럼 '밤 마실' 삼아 나온 주민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주한 지 5년이 되도록 이적치(아직까지) 전기, 전화가 안 들어오는 집도 있당게. 우리덜언 군민(郡民)도 아녀." "댐 생기먼 좋은 일 있다더만 먹고 살 길만 막막혀 졌어." 그러면서도 아직 기대를 다 버리지는 않았다. "인자 시작인디 좀 지둘러 봐야지 않겄어?" "군청 말대로 올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되면 달라지겄지."

둑 길이 498m, 높이 70m에 저수용량 815만㎗. 국내 댐 가운데 크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용담(龍潭)댐은 10년의 역사 끝에 2001년 완공됐다. 지난해 처음으로 물이 가득 찬 이 댐에는 진안의 아픔과 원대한 꿈이 함께 담겨 있다. 8개 읍면 2,864세대 1만2,000여 명의 보금자리가 거대한 호수로 바뀌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용담댐에서 진안의 조용한 용틀임이 시작되고 있다.

진안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걸터 앉은 고원지대로 그 중심에 마이산(673m)이 있다. 마이산 남쪽으로 내리는 비는 섬진강, 북쪽으로 내리는 비는 금강의 시원(始原)을 이룬다. 이 지역은 얼마 전만 해도 오지의 대명사였다. 말 귀 형상을 지닌 특이한 산세와 그 안쪽에 쌓은 신비한 탑사를 보기 위한 등산객이 봄가을로만 간혹 오갔던 곳이다. 흔히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불리는 3개 군 가운데서도 진안은 무진장 춥고, 무진장 눈이 많이 오고, 무진장 길이 험했다.

최규영(57) 진안문화원 이사는 "진안은 농토가 적어서 산물도 형편없고, 호족도 형성되지 않았으며, 사림의 전통도 없는 '잊혀진 땅'이었다"며 "조선시대에 귀양도 보내지 않았던 곳"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다 보니 마이산에 얽힌 희미한 전설 외에는 변변한 문학도, 기록도, 그림도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용담댐 추진은 진안 개발의 신호탄이었다. 댐이 착공된 1992년부터 진안에는 개발 붐이 일었다. 산을 깎아 논을 메우고 밭을 밀어 도로를 냈다. 물에 잠기지 않은 농토는 특산물 재배지나 관광단지, 농공단지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진안에서 가장 큰 건물도 레미콘 공장이다.

진안 개발의 핵심은 용담댐과 마이산을 잇는 거대한 관광벨트 조성이다.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마이산 뒷편 성수면 풍혈 냉천에는 95년부터 23만평 규모의 온천관광지를 만들고 있고, 마이산 앞쪽 사양동에는 북부 예술관광단지(6만6,000평) 터가 자리잡았다. 용담댐 하류 9만여 평에는 올해부터 9년간 770억원을 들여 송풍지구 관광지를 건설하며 댐 주변 경관이 뛰어난 지역에는 2006년까지 185억원을 투입, 각종 편의시설을 세울 예정이다. 또한 최근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통하는 장계 인터체인지가 생겼고, 익산에서 장수를 거쳐 함양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외에도 관촌―마령, 부귀―상전 간 포장 도로가 신설 또는 확장되고 있다.

박홍영(44) 군청 홍보계장은 "지난 10여년 간 관광연계단지 조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매듭됐다"며 "머지않아 진안 전체가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종합 관광지로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마이산을 찾는 관광객 100만명과 무주 리조트, 지리산 등 주변 관광지를 방문하는 사람을 합친 약 200만명이 머물러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진안 개발로 가장 먼저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인삼 더덕 고추 인진쑥 표고버섯 흑돼지 등 특산물 산업이다. 진안의 인삼 생산량은 연간 1,360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15%를 차지, 금산을 제치고 국내 최대 산지로 떠올랐다. 40년간 인삼과 함께 살아온 송화수(70)씨는 "저농약 무비료 농법으로 생산되는 진안인삼이 최근 이름이 알려져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고 자랑했다. 인삼만 8,000평을 재배하면서 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송씨는 "2000년 매출이 2억7,000만원이었는데, 2001년과 지난 해에는 각각 4억3,000만원과 4억5,000만원이나 됐다"며 "대만 등 해외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진안 개발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한편으로 걱정도 가득하다. 팔당댐이든 대청댐이든 댐 들어선 곳이 잘 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민자(民資)를 유치해 추진하는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불안하다. 북부예술관광단지 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명춘(67)씨는 "대대로 지어오던 논밭 2,500평이 1999년에 모두 수용된 후 관광단지 내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단지조성이 늦어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수몰지구 문화재를 전시하는 박물관, 진안 특산품 판매장, 목공예전시관과 함께 대규모 숙박단지가 들어설 이 지역은 2, 3년 전에 부지조성을 마쳤으나 분양이 지연되고 있다.

"현재 청사진은 거창하지만 과연 제대로 이뤄질지 반신반의하고 있어요. 계획대로만 된다면 진안은 획기적으로 변하겠지만요." 진안에서 2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3년 전부터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김모(59)씨의 말이다.

1995년부터 단체장 선거에서 3번째 연임하며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임수진 군수는 "청정지역 건강 여행지라는 컨셉으로 투자유치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 민자 참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안은 용담댐 건설 후 군민의 4분의 1이 수몰민으로 고향을 떠나 오히려 군세(郡勢)가 위축됐다. 아직은 용담댐 주변도 썰렁하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주유소와 민박집, 심지어는 용담댐 홍보관마저 모두 문을 닫고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진안 사람들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은 아닌가 초조해 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인 15일 밤 송풍리 마을에서는 진안 전통굿인 좌도농악이 펼쳐졌다. 주민들은 오랜만에 돼지를 잡고 막걸리를 돌렸다. 커다란 달집도 만들어 태우며 소원을 빌었다. "가슴에 고향 묻은 사람들 용꿈 꾸고 번성하게 해주세요. 편안하고 살기 좋은 마을 이루게 해주세요."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진안을 포근하게 비추고 있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 농사꾼 오재희·김정희 부부

"왼갖 농사를 다 해보지만 해마다 수입이 줄어든당게. 2000년에만 해도 연 4,000만원 소득을 올렸는디, 2001년에는 3,500만원, 작년엔 제우 2,400만원 밖에 못 벌었제. 새끼들 결혼도 시켜야 하고 대학도 보내야 하는디 큰 일이여 큰 일."

마령면 평지리에 사는 오재희(55)·김정희(48)씨 부부는 요즘 농사일 하는 게 어떠냐고 묻자마자 한숨부터 내쉰다. 오씨는 군 생활 3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농군. 현재 30마지기(6,000평)의 논농사와 고추·담배 농사를 짓고 있어 동네에서는 여유 있는 편에 속하지만 농산물시장 개방 이후엔 "모든 게 절단(결단)났다"고 말한다.

"3,4년 전만 해도 찹쌀 한 가마에 38만원 했는디 지금은 14만원 밖에 안가요. 추곡수매도 한 집에 두 가마만 사가니 나머지는 팔지도 못하고 그냥 쌓아 뒀당게요. 하우스 농사도 기름값이 비싸 포기혔고, 우렁이 농법도 일교차가 심해 우렁이가 죽는 바람에 실패해 부렀어요."

오씨는 정부의 농촌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몇 년 전부터 농민 시위에도 동참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축산물 시장개방 반대를 위해 소를 몰고 도심으로 나갔고, 농산물 개방 반대시위 때는 부인과 함께 서울 대학로에도 가봤다고 했다.

용담댐 건설과 마이산 관광지 개발에 대해서도 심드렁하다. "오히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거니 축사도 못 지을 거고 농약도 제대로 쓸 수 없지 않겄어요? 그뿐이간디. 안개가 늘어 그나마 작물도 영향을 받을 거고요. 관광객을 직접 상대헐 수 있는 거나 찾아야 쓰겄어요."

오씨는 그래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형편이 낫다고 자위한다. 딸 둘 모두 대학을 졸업해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고 지난 해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흙집을 허물고 새 집도 지었다.

"결혼허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농번기, 농한기가 따로 없었제. 추수 뒤에는 공사판이든 장사든 돈 되는 일은 다 쫓아 댕겼으니 이나마 사는 것이여. 올해 대학 들어간 아들녀석 졸업할 때 까지는 어떻게든 뛰어야 하는디..."

영농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요즘에는 여기 저기서 교육도 받고,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도 열심히 뒤지고 있다는 오씨 부부. 농삿일로 굵어진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어색한 모습에는 갈수록 버거워지는 농촌의 절박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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