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친아버지처럼 모셨던 스승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서울대 탁구부출신 제자들이 직접 변론을 맡아 스승의 유족에게 유산을 전해준 사실이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단독 김필곤(金泌坤) 판사는 최근 핀란드인 크리스티나 에바 노칼라(48) 등 2명의 핀란드인이 "민호기(閔虎基) 서울대 수리학부 교수의 자녀임을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친생자 인지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원고들이 한번도 참여하지 않은 이번 소송에서 원고 대리인 자격으로 법정 변론을 맡아온 사람은 서울대 탁구부 동창회 총무인 조성준(39)씨.
변호사 없이 직접 변론에 나선 조씨는 "민 선생님은 150여명 탁구부 동창들에게 '아버지'같은 분이었다"며 "선생님이 호적상 '총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동창들과 뜻을 모아 핀란드 가족에게 소송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소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민 교수가 지난 해 5월 78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민 교수의 한국 친척들이 '핀란드 유족들의 상속권 존재유무'를 타진해 왔고, 국내법상 인지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핀란드 국적의 유족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1954년 미국 유학 도중 핀란드인 부인을 만나 결혼, 크리스티나와 헤이키등 남매를 뒀지만, 핀란드 투르크대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부인 등 가족들과 40년동안 떨어져 지내왔다.
방학때만 서로 왕래하는 '이산부부'였지만 '견우 직녀'못지않은 금슬을 지켜왔던 민 교수는 지난해 "재산 12억원 중 3억원은 서울대 탁구부및 서울대 발전기금으로 기증하고 나머지는 핀란드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조씨는 "선생님은 칠순의 나이에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탁구로 달랬던 '젊은 오빠'였다"며 "탁구부에 남긴 장학금으로 별도의 장학재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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