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 지음·이용대 옮김 한겨레신문사 발행·3만5,000원영국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1854∼1941)의 '황금가지'는 원시 종교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저작이다. 1890년 두 권 짜리로 처음 나온 뒤 세 차례의 개정을 거쳐 1936년 13권으로 완간된 이 책은 신화와 종교에 관한 비교문화적 연구의 효시이자 고전 중의 고전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영국은 프레이저의 나라"라고 했을 만큼 이 책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종교학자 엘리아데, 소설가 D. H. 로렌스, 시인 T.S. 엘리어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도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처음 출간 당시 이 책은 '침대보를 덮어쓰고 회중전등 불빛을 비춰가며 읽어야 하는 위험한 책'이었다. 프레이저는 원시 종교의 관습을 비롯한 이교적 전통과 기독교 전통이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무수한 예를 들어 밝힘으로써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신봉하던 동시대 유럽인들을 격분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형을 원시 종교의 속죄양 희생 의식에 결부시킨 것은 기독교 정통 신학을 통박하는 도발로 비쳐졌다.
프레이저는 종교의 기원과 그에 따른 관습의 진화 과정을 수많은 신화와 전설, 민족지적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함으로써 호사의 극을 달리는 인문학적 교양을 분석적 통찰력으로 엮고 있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박진감과 유머, 쾌활한 기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 방대해서 펴보기도 전에 질릴 지경이다. 그래서 2종의 축약본이 있다. 프레이저 생전에 나온 1922년 맥밀런 판과 프레이저 사후에 로버트 프레이저가 펴낸 1994년 옥스포드 판이다. 그 동안 국내에는 맥밀런 판이 소개됐고, 이번에 나온 것은 옥스포드 판이다. 축약본인데도 900쪽이 넘는다. 통독하기 어렵다면,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좋다. 신화 읽기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무궁무진하게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판 축약본은 프레이저가 집중 공격에 시달린 끝에 빼버린 내용들, 예컨대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대한 위험한 단락들, 여가장제에 대한 고찰, 신성한 매춘에 관한 감미롭고 불경스러운 구절들'을 되살렸다. 또 맥밀런 판에서 일부 누락된, 프레이저의 문장 중 가장 생생한 묘사를 담고 있는 중동의 이교도 숭배의식을 복원했다.
프레이저는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주술의 시대, 종교의 시대, 과학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종교적 관습이 아득한 고대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연속성을 밝히고 있다. 110년 전 처음 나온 이 책은 그래서 여전히 새롭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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