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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無0眞空 -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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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無0眞空 -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입력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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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배로 지음·고중숙 옮김 해나무 발행·1만8,000원로버트 카플란 지음·심재관 옮김 이끌리오 발행·1만2,000원

'0'은 우리가 배운 가장 쉽고 활용도가 높은 숫자의 하나이다. 어떤 수건 거기서 자신만큼 빼고 남는 것은 0이다. 0과 곱하기를 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십진법에서 자릿수의 비어 있는 곳을 표시할 때도 0을 쓴다.

이 정도는 단순한 사례에 불과하다. 영은 어느 숫자보다도 그 의미 폭이 깊다. 물리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변주되는 기호이다. 물리학의 진공 논쟁은 영이라는 개념을 현실 세계에 적용한 경우다. 인도 철학과 불교의 핵심 개념의 하나인 무(無) 역시 영이 관념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얻은 사례다.

동시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두 권의 책은 0의 역사는 물론 0의 개념이 다른 영역으로 퍼지면서 어떤 사고와 논쟁을 촉발했는지 살피고 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인 존 배로의 책이 우주 진공 등 물리학 영역에서의 영의 문제에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할애한 것을 제외하면 두 저자가 책을 풀어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학이나 대중문화 지식까지 총동원해 책을 읽기 쉽고 재미 있게 만드는 재주도 닮았다.

두 책이 밝히는 0의 기원은 상식과 다르다. 0은 통상 인도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기원전 3,000년께 수메르에서 먼저 사용됐다. 현재의 이라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핀 수메르 문명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유명하다. 당시 수메르에서 0은 단지 숫자를 표기할 때 빈 자릿수를 채우는 기호였다.

0을 참으로 문명의 업적으로 만든 것은 인도다. 5세기 중반 0을 역시 수의 자리를 채우는 기호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인도인은 그후 200년 사이 다양한 속성을 부여하며 0을 숫자의 '대부(代父)' 자리로 끌어올렸다. '어떤 수에 영을 더하면 그 수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수에서 영을 빼도 마찬가지다. 어떤 수에 영을 곱하면 그 결과는 영이다'는 규칙이 모두 이때 나왔다.

인도의 0이 더욱 뜻 깊은 것은 거기에 풍부한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는 점이다. 0과 마찬가지로 '텅 빈' 또는 '공허'를 뜻하는 '수냐'(Sunya)는 공간, 진공, 하찮음, 비존재, 무가치, 결핍 등의 관념을 두루 포괄한다. 그리고 이런 관념이 서로 얽히면서 인도 철학의 다양한 사유를 파생시켰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중세 때까지도 0의 개념을 생각하기는커녕 아랍에서 전파된 0를 '사탄의 숫자'라며 거부했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에서 0의 역할처럼 실제 세계에서도 진공이 존재하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믿었다.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깨뜨린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 이후 이 논리는 설득력을 얻었지만 빛의 진행에는 매질이 필요하다는 파동설에 의해 파기됐다. 이후 진공론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다시 존재 근거를 얻었고 곧 양자역학의 논리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카플란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바와 달리 공간의 끝과 시간의 시작, 그 어느 곳에도 영이 웅크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명 사물의 한 가운데서 영을 찾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은 '음수의 개념이 확실해짐에 따라 양팔 저울의 받침대, 좌표계의 중심점, 멀리 항해해 나왔다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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