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글·매그넘 사진 생각의나무 발행·1만5,000원이른 아침 숲을 달릴 때 땅을 힘차게 딛는 다리. 그 단단한 아름다움. "몸으로 놀 때 여러 몸들이 빚어내는 무수한 동작들은 모두 그 순간에만 유효한 표정을 갖는다. 동작의 표정들은 쉴 새 없이 바뀌어 종잡을 수 없다. 그 무수한 동작의 표정들은 모두 생명의 이름으로 동등하다."
소설가 김훈(55)씨의 에세이 '공 차는 아이들'의 저자는 엄밀하게 말해 사진집단 매그넘이다. 김씨는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우연히 만난 사진집 '매그넘 풋볼'에 빠졌다. 1947년 로버트 카파 등에 의해서 설립된 매그넘은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에서 객관적인 기록성과 작가적 개성을 결합시키는 정상의 사진가 집단이다. 매그넘의 사진을 보면서 "공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던 김씨는, 그해 말 신문기자 생활을 다시 접고 그때의 욕망을 지폈다. '매그넘 풋볼'의 사진 중에서 몇 장을 고르고 길지 않은 산문을 붙였다. 사진이 주는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울림을 김씨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살려낸다.
한쪽 다리가 없는 아이, 양쪽 발목이 모두 잘려나가 오른팔로 목발을 짚은 아이가 두 다리를 가진 아이들과 섞여 공을 찬다. 햇빛 좋은 날 아이들의 몸에 꼭 붙은 그림자도 한쪽 다리가 없고, 목발을 짚고 있다. "두 발로 달릴 수 있는 아이들과, 한 발로 달릴 수 있는 아이와 오른팔의 힘으로 달릴 수 있는 아이들이 공의 자장(磁場) 안에서 모두 동등하다."
축구화와 축구 양말을 신은 다리들. 작가의 눈은 옷을 입은 다리로부터 인간의 열등성을 발견한다. "소나 말은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있어서 신발을 신지 않고도 달릴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은 소나 말보다 열등하다. 처음부터 열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명이 동물과 동등했던 인간을 열등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발바닥의 굳은살을 버리고 양말을 입히고 신발을 신겼다.
분명 축구는 문명 이전의 놀이로 부를 만하다. 필요한 것은 땅과 사람과 공 뿐이다. 축구인 빌 생클리는 "어떤 사람들에게 축구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나는 그것이 몹시 못마땅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축구는 그런 문제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공이 만들어내는 몸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에게는 그렇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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