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미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가격은 배럴 당 35달러를 돌파했으며,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의 가격도 배럴 당 29달러를 넘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최고치로, 위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달러대였던 것에 비하면 불과 5년 사이에 두 배도 넘게 오른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이 조만간 발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심각한 고유가를 경계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한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을 정도로 실내온도를 높인다거나 작년 연말에 설치한 건물외벽과 가로수의 조명장식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며칠 전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상가 가운데 86%가 영업이 끝난 심야시간에도 간판조명을 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의 전력소비량이 한여름 냉방수요로 인한 8월의 전력소비량보다도 높게 나오는 등 최근 들어 겨울철 전력 소비량이 여름철보다 더 많은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겨울철에 이렇게 전력사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석유나 가스난방 대신에 편리하고 비교적 안전한 전열기기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열기기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편리하다고 해서 마냥 사용하다가는 에어컨 못지않은 비용이 들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게 된다.
전기는 편리하고 깨끗한 고급 에너지원이지만 에너지 효율이 상당히 낮다. 석유나 가스를 원료로 하여 발전을 할 경우 원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37.8%만이 전기로 변환된다. 또 전기가 각 가정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추가로 4%가 손실된다. 결국 화력발전소에서 석유나 가스로 만든 전기를 가정에서 사용할 경우, 원래 연료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의 35% 미만만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발전소에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배출가스는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깨끗하고 편리한 전기를 사용하는 만큼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전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전열기의 스위치를 켤 것이 아니라 내복을 입는다던가 다리 쪽에 담요를 덮는 등,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많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실내난방 온도를 높이는 대신 상 밑에 방열기구를 넣고 그 위에 이불을 덮는 형태의 '고다츠'라는 난방기구를 사용한다. 온돌방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는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요즘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우리도 적은 에너지로 높은 효과를 내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전기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부제도도 국민들이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가령 정부는 지난 5일부터 에너지 절약 가정에 대해 현금을 돌려주는 캐쉬백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얼마 전 선진국인 노르웨이에서 전기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노르웨이는 천연 자원의 대부분을 수출하고 풍부한 수력자원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가뭄으로 인해 발전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에 노르웨이 정부가 내놓은 최우선 대책은 사용하지 않는 방의 전등을 끄고 실내 온도를 낮추는 등의 에너지 절약이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에너지 부족사태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에너지 절약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에너지의 97%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온 국민이 힘을 하나로 모으던 정성으로 다시 한 번 국민의 힘을 결집하여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새나가고 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정 장 섭 에너지 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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