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자시라구요? 네, 여기는 코미디언 선발 대회가 열리고 있는 스튜디오입니다. 웃기자 나와주세요. 호호호호", "아이, TV에 나가는 건 아니라구요? (화장하던 손 거울을 덮으며) 이거 배신의 콩나물을 무치는구만", "오신 김에 길 좀 알려 주실래요" (놀라서) "네?" "(느끼한 표정으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요?"서울 홍익대 앞 씨어터 제로에서 지난 연말부터 '개그콘서트'를 공연 중인 '코미디시장'의 연습실에 들어선 기자는 순식간에 포위됐다. 제각각 자리를 잡고 연습에 몰두하던 단원들이 어느새 낯선 방문자 주위에 몰려 들어 서로 한마디씩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바람에 시장통이 따로 없다. '재래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 듯 여러 종류의 웃음을 마구, 아낌없이 내다 팔겠다'는 극단 이름에 담긴 의미가 저절로 이해가 간다. "자, 연습해라. 오늘 제일 재미있는 사람한테 10만원 건다"고 외치며, 단원들이 '시장님'이라고 부르는 코미디언 전유성(53)씨가 나타났다.
코미디시장은 전씨가 2001년 11월 코미디 저변 확대와 신인 발굴, 체계적 교육을 통한 프로 코미디언 육성을 위해 사비를 털어 만든, 교육과 공연을 병행하는 극단이다.
관객이 많이 들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최고의 스승은 관객'이라는 전씨의 평소 생각처럼 이번이 세 번째인 공연은 교육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짜로 가르치는 대신 출연해도 보수는 따로 없다. 다른 극단과 달리 오디션도 없다. '코미디 하고 싶은 사람은 다 받아준다'는 말에 처음 60여명이 모여 들었다. 1년 남짓한 시간을 거치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15명이다.
"애들을 가르쳐서 돈 벌겠다는 생각도 없고, 방송국 구석구석에 진출시켜 내가 코미디 대부(代父)가 되자는 건 더더욱 아니에요. 재능이 있으면 이름은 저절로 알려집니다. '우리 단원 텔레비전 한 번 출연시켜 달라'고 사정하고 다니지 않아요. 그래도 교육기간(6월까지)이 끝나기 전에 몇몇 재능 있는 단원에게는 벌써 섭외가 많이 들어오죠. 사실 애들 밥 먹이고 가르치느라 아내(진미령)가 밤무대까지 뛰어야 할 판입니다."
전씨의 너스레는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굳이 코미디 극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얼까. "제대로 된 코미디 교육기관이 없어요. 방송국 시험이 거의 유일한 통로인데 나이가 차면 오디션에 응할 수도 없어 밤무대나 기웃거려야 하는 게 현실이죠. 그러면 3류도 아니고 한 58류 코미디언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이들을 거둬 들여 같이 고민하고 배우고 공연하면서 식상해져 버린 요즘 코미디와는 다른 진짜 코미디를 보여 주겠다는 취지죠."
단원 교육이 굳이 혹독할 이유도 없다. 월급쟁이로, 평범한 자영업자로 밋밋하고 지겨운 삶에 지쳐 있던 중 '나는 남을 웃기며 살아야 할 인생'이라고 대오각성하고 찾아 든 단원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상경해 친구집이나 친척집에 얹혀 살면서도, 한 푼을 못 받아도, 이들은 코미디에 대한 열정으로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힘이 넘친다.
이은희(27·여)씨는 '시집 가기 딱 좋은 직장'이라는 은행원을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왔다. "어느 토요일 오후 은행 안 현금지급기에 돈을 채워넣고 있는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깔깔 웃으며 지나가는 거에요. 웃으며 또 남을 웃기며 평생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난 왜 돈이나 세고 있나 하는 생각에 뛰쳐 나와 버렸죠."
"웃기지도 않는 전유성이 후배들한테 무슨 코미디를 가르치느냐는 사람도 많아요. 사실 코미디언으로서 난 엉성하기 짝이 없지요. 내가 뭐 최양락만큼 웃기나, 임하룡만큼 웃기나. 1년에 한 두 번 정도 웃기면 성공한 거지요. 그래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라고 잘 가르치는 게 아니듯 난 가르치는 거 하나는 잘해요. 그러니 재능을 썩히지 말고 후배들을 가르쳐야지요."
어설프고 어딘가 비어 보이던 단원들은 어느새 프로의 옷을 입어가고 있다. 서성금(23·여)씨의 말에서는 은근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나처럼 웃기는 애가 왜 방송국 시험에 계속 떨어질까 생각했죠. 이제 이유를 알았어요. 처음에는 그냥 웃기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코미디에는 법칙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죠.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는 걸 하나 봐도 '앗, 김씨네 개미가 지나가네' 하는 식으로 남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거죠. 하나 배우면 또 배워야 하는 배움의 블랙홀 같은 게 코미디예요."
시리즈 제목이 '문화발전소'라는 말에 코미디시장 단원들은 입을 모았다.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보에 온(on) 스위치를 올려도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튼튼한 웃음 발전소가 되겠습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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