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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교수의 국제潮流]美시간끌기 對 北관심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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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교수의 국제潮流]美시간끌기 對 北관심끌기

입력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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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미 관계는 양자간에 끊임없는 입씨름이 오가는 가운데 실질적 진전 없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중 미국이 최근 취한 일련의 조치와 언급은 언뜻 보기에 대북문제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먼저 북한의 협박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이나, 북한문제의 해결과정이 길고 어려울 것이며 단순히 병마개를 다시 닫기보다 병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파월 국무장관의 말 등을 종합해 보면, 일단 미 행정부가 북한 사태를 시급한 사안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과거와 같이 북한의 위협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을 원론적으로 되풀이하면서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북한 정권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원거리 전폭기의 전진 배치 계획을 발표했고, 핵발전소 가동 시 군사적 선택을 포함한 모든 해결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 점 등은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으나 주변 국가들과의 다자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입장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대북 정책 혼선에 대해 미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혼란스럽고, 수동적이며, 의도적으로 소홀히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런 비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파월의 유엔 안보리 발언은 가장 온건한 사람이 가장 강력한 제재를 주장할 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 것이었다. 즉, 미국의 정책노선을 볼 때 강-온 간의 정책 대결을 기계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단계에 따라 온건론자가 강경노선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파악하려면 북한문제를 항상 이라크 사태와 연계해야 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전력투구하면서 북한 사태가 이라크 문제 해결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라크 사태의 해결이 북한에 주는 함의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이라크 사태를 해결하는 동안 북한 스스로 변화하도록 압박하는 시간벌기 게임을 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사태 진전에 따른 상황 변화가 미국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거나 유리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다.

한편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 사태를 활용하여 시간을 벌고 다자적 해결 방식을 모색하려는 데 강하게 반발하면서, 파월의 유엔 연설 시점에 맞춰 핵 발전소의 재가동을 발표하고 전면전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미국의 관심 끌기에 전력하고 있다. 즉, 북한은 이라크 사태 이후 미국의 다음 목표가 북한이 될 것이며, 혼란스러워 보이는 미국의 정책도 이러한 가능성의 징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사태가 군사적 해결로 치닫는 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일관되기보다는 이라크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는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문제는 비켜가는 두 기차처럼 서로 멀어져 가는 둘 사이의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게 할 기제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기대를 모았던 우리의 대북정책은 대북 송금을 둘러싼 국내 정치의 혼선, 대북 특사의 헛걸음 등으로 인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다자적 해결에 소극적인 중국의 외교적 노력에도 기대할 것이 그리 많지 않으며, 러시아의 중재 노력 또한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의 이견 조정 여하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변화는 이라크 사태의 해결이나 중국의 태도 변화에 따른 국제적 협의체 구성이 가능해져야만 비로소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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