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위기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라크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간에, 유럽 내부에서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3개 회원국이 10일 이라크전 발발시 터키 방위 지원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와 함께 이라크 무기 사찰 강화를 촉구하는 3국 공동선언까지 채택했다.
작년 말 유럽연합(EU) 회원국 확대에 합의했던 나라들이 불과 몇 달 만에 이라크 문제로 사분오열되고 있는 것이다.
나토의 내분 프랑스 독일 벨기에 3국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경우 터키 방위를 위해 나토의 군사 지원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제안에 반대했다. 터키 지원을 발판으로 나토를 이라크전에 개입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19개 나토 회원국 중 이 세 나라를 제외하고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나머지 16개 국은 터키 지원에 찬성했다.
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은 "치열한 논쟁이 있었으나 나토와 터키의 관계는 여전히 견고하다"면서도 "논쟁이 계속되면 동맹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토의 한 관계자는 "프랑스가 이의 제기 마감 시한을 1시간 앞두고 침묵을 깨자 벨기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독일도 마감 시한이 지난 뒤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당사국인 터키는 즉각 나토 헌장 4조에 따라 긴급 회의를 열 것을 제안했다. 4조는 '회원국 중 영토적 주권, 정치적 독립 또는 국가기구의 안보가 위협 받을 때 회원국들은 이를 협의한다'는 규정으로 이번에 회의가 열릴 경우 53년 나토 역사상 첫 사례가 된다.
유럽의 갈등 독일 프랑스 벨기에와 달리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덴마크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8개 국은 1월 말 이미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 지지를 선언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독일까지 포함해 3국 공동 명의로 발표한 선언에서 "3국은 이라크의 평화적인 무장해제를 위해 모든 기회를 부여하려 한다"며 "무력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3국은 선언에서 밝힌 이라크 무기 사찰 강화를 골자로 하는 '평화적 대안'을 14일로 예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유엔 사찰단원을 늘린다고 해서 이라크의 무장 해제를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3국의 계획을 일축했다. 영국은 이날 전폭기 7대를 걸프 지역에 파견하는 등 미국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차는 국내 여론과 이라크 석유 개발 참여 등 경제적 이해, EU 내부의 주도권 다툼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응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토 거부권 행사에 대해 "그 같은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하고 "상호 방위에 대한 합의 성명을 내놓지 못하면 서방의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나토 분열로 이라크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나토의 테두리를 벗어날 것"이라고까지 말해 강경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리처드 펄 미 국방부 수석고문도 "나토는 프랑스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프랑스를 압박했다.
전망 나토는 12일 (한국 시간) 회의를 속개해 터키 방어 지원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나 프랑스 등의 반대 입장을 되돌리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라크 사태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을 경우에도 미국에 대한 반대가 계속될지는 미지수이다. 안보리 표결로 간다든가 하는 결정적인 시점에서 미국은 늘 '당근과 채찍'으로 반대국들의 팔을 꺾는 성과를 보여왔기 때문에 최종 국면에서 러시아, 프랑스 등의 입장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주요국에 대해 '이라크 석유 개발 참여 보장'을 당근으로, "반전을 고집하면 고립될 것"이라는 압박을 채찍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무기사찰단이 이라크 사찰 결과에 대한 2차 보고를 하는 14일이 분열이냐 통합이냐의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특히 EU 의장국인 그리스의 요청으로 17일 열리는 EU 긴급 정상회담에서 각국 지도자들이 이라크 해법을 어떻게 조율할지 주목된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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