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천연가스가 공룡이나 바다생물 등 유기체의 사체로부터 생성됐다는 화석연료설(유기성인론·有機成因論)에 도전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석유가 지구 탄생과정에서 무기물로부터 생성됐다는 무기성인론(無機成因論)에 바탕을 둔 이 주장은 석유가 지구 생성이래 지표로 한번도 나오지 않은 깊숙한 암반층에 매장돼 있는 예를 근거로 든다. 이는 석유가 지구 내부의 무기물로부터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자원량이 무한정 존재한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미국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천 최근호(17일자)는 이 주장이 입증될 경우 석유자원 유한론과 연관된 각국의 자원전략이 수정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무기성인론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미국 석유지질학자협회(AAPG) 등은 6월 런던에서 국제회의를 열어 석유의 기원에 관한 학술토론을 갖기로 했다.
석유의 무기성인론은 남중국해에 위치한 베트남의 '흰 호랑이' 유전 등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남부 붕타우시 동남쪽 200㎞ 해역에 위치한 흰 호랑이 유전은 일반 유전과 달리 해저 1.6㎞ 화강암층에서 석유를 퍼올리고 있다. 이곳과 인근의 '검은 곰' 유전, '검은 사자' 유전에서 지난해 채굴한 석유는 1일 33만8,000배럴로 90% 이상이 깊숙한 암반층에서 나왔다.
흰 호랑이 유전의 석유 매장 지층이 지표로 나와본 적이 없다는 것은 전통적 화석연료설을 부정하는 중요 단서로 지적된다. 공룡이나 바다생물의 사체가 퇴적되지 않은 지층에서 석유가 생성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흰 호랑이 유전의 채굴사인 미국 석유메이저 코노코필립스사의 한 관계자는 미국 동부해안과 알래스카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도 유망한 채굴지역이라고 말했다.
지하 깊은 암반층에서 석유를 채굴하려는 시도는 1980년대 스웨덴에서도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무기성인론을 주장하는 토마스 골드 전 미국 코넬대 천문학 교수의 주장에 따라 스톡홀름 북부의 한 호수 바닥을 시추했다. 지하 6㎞ 암반층까지 파내려 가다 장비문제로 중단하긴 했으나 석유 80배럴을 퍼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 석유의 정체를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무기성인론자들은 석유가 화석연료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학설은 여전히 유기성인론의 화석연료설이다. 화석연료설 지지자들은 비록 지하 화강암층에 석유가 있다 하더라도 생성지점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한다. 지각운동에 의해 절단된 암반층으로 석유를 내포한 다른 지층이 끼여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기성인론이 옳다 하더라도 채굴 경제성이 문제다. 코노코필립스사 관계자는 "흰 호랑이 유전의 암반층은 예외적으로 심도가 낮다"며 해저 깊은 곳의 암반층을 시추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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