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5일부터 연재해 왔던 '중국을 다시 본다' 시리즈를 마치며 '노무현 정권에 바라는 대 중국 정책' 좌담회를 마련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투자국으로 부상했으며 정치·외교적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양국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25일 출범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중요 과제다. 좌담회에는 서진영(徐鎭英·고려대 정외과) 문흥호(文興鎬·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이근(李根·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 3명의 중국전문가 참석했다.
―21세기 외교 환경을 고려하면서 지금까지의 대 중국 정책을 평가한다면.
서진영 교수= 향후 5년간 노무현 정권 집권기는 통일외교를 포함한 한국외교의 중대한 전환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 진전과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긴장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 특히 한미 관계의 균형 재조정 필요성이 대두됐다. 21세기에 적합한 외교적 틀이 구상·실천돼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대 중국 정책의 기본 목적과 방향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외교의 기본목표를 안보와 통일, 경제번영에 둔다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대 중국 정책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단기적인 대북 외교의 성과에 매달린 결과 대중 정책의 큰 틀이 흐트러진 측면도 많다.
문흥호 교수= 지금까지 대중 외교가 통일외교의 종속변수로 취급되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지불한 비용이 너무 컸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별개의 사안에서도 중국에 지나친 양보를 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앞으로 대중 외교는 북한 문제의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비용과 효과 분석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이근 교수= 한중 경제관계는 90년대부터 긍정적인 발전을 해왔다. 중국 경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더불어 발전하려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활황은 내수와 중국요소 덕분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체계적 지원 부재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대중 외교의 균형잡기는 어떤 형태가 바람직한가.
서 교수= 지금까지 한국 외교는 대미 외교 위주로 매우 단선적이었으나 탈냉전과 함께 미국의 중요성은 절대적 중요성에서 상대적 중요성으로 변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리라는 생각은 판단착오가 될 것이다. 한·미·중 3각 관계의 운용을 위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문 교수= 대미, 대중 외교의 균형점을 설정하는 것은 노 정권의 최대 과제다. 한·미·중 3각 관계의 재조정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 재조정 방식은 포괄적이 아닌 사안별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젊은층이 비교적 중국에 호의적이라는 점은 노 당선자가 매우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노 당선자의 젊은층 편향성이 대중 관계에 섣부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
서 교수= 중국은 덩치에 비해 대외적 영향력을 자제하는 측면이 있다. 영향력 행사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의 대외적 영향력이 과대평가된 측면도 있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중국의 대 북한 영향력에 과도하게 기대를 거는 것은 곤란하다. 과도한 기대는 한국의 저자세를 낳아 외교적 카드를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탈북자 문제에서는 우리가 알아서 조심하는 경향을 보였다. 중국이 불쾌해 할 문제는 많겠지만 모든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문 교수=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는 분명한 것 같다. 과거에 비해 북중 관계가 경제적, 인적, 이념적 측면에서 상당히 희석됐다. 현재 북한의 중국 유학생은 50명이 채 안 된다. 중국의 4세대 지도부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대내외적 리더십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신의주 특구 건설 계획을 중국이 비토한 것은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에 중국 전문가가 부족해 대중 협상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
서 교수=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외교·통상 분야 관료의 관리 문제가 주 원인이다. 주요 분야와 지역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문 교수= 한국과 중국간 체제 차이에 따른 문제도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외교관들만 해도 남북한에서 상당 기간을 보내 한반도화 해있다. 최소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저변 확대 노력은 있어야 한다.
이 교수= 삼성 등 대기업이 80년대 지역 전문가 육성을 시작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중지했다. 실물경제 측면에서도 중국 전문가 양성은 필수적이다. 중국인의 입맛과 소비기호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이 중국과의 외교적 접촉을 자기 과시적 측면으로 오용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 교수= 정당 외교에도 비즈니스적 성격이 강화돼야 한다. 정치인들은 해외에서 공허한 담론보다는 기술력 있는 중소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의 중국 시장 활착을 도와야 한다. 한국 기업들을 중국 관련 기업과 연결시키기 위한 박람회 개최나 참석 등 방법은 많다.
문 교수= 중국의 경우 공산당 중앙 대외연락부의 역할이 과거보다 약해져 외교부에 이관되는 사항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실효성 없는 나들이나 정당간 경쟁적인 중국 유력 인사 만남 등으로 현지서 웃음거리가 돼 온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서 교수= 당과 국가가 일체화한 체제의 특성상 공산당 중앙 대외연락부의 외교는 국무원 외교부를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차기 정권에 중국 전문가 양성을 기대하는 주문이 적지 않다.
서 교수= 전문가 양성 전략은 중국에 대한 철학이 전제돼야 한다. '중국 위협론'을 비롯해 중국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 정책의 프로그램과 정책 집행기구가 재정비돼야 한다. 노 당선자가 중국을 중시한다고 했지만 전략적 성찰을 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노 당선자는 향후 5년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교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외교가 가장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에 외교적으로 역량 있는 인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문 교수= 이미 있는 인재를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중 수교 후 10여년간 각 분야별로 인재가 상당수 배출됐지만 매우 분산돼 있다. 노 당선자는 앞으로 이들 인재를 분야별로 풀을 구성,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정책연구와 결정에 전문가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책이 특정집단이나 인물에 의해 좌우돼온 과거의 폐단이 시정돼야 한다. 대통령의 측근보다는 외교부 등 공식적 기관이 중심에 서야 한다. 정책이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도록 해야 전문가들이 발언하고 참여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이 교수= 경제분야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중국 포럼에 전문가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다. 문제는 활용에 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투자 파트너로 등장함에 따라 양국간에 통상 분규가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통상 문제 해결능력을 가진 사람이 외교에서 중시돼야 한다.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 현상이 우려되는데.
이 교수= 한국의 산업 공동화는 장기적으로 피할 수 없다. 대만의 경우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는데도 최근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은 기업의 중국 진출 확대에 따른 산업 공동화의 영향이 컸다. 한국은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산업 공동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생존하기 위한 관건은 중간재와 소재산업의 우위를 갖는 데 있다. 생산시설은 중국으로 이전하더라도 연구개발과 마케팅은 한국에서 하는 식의 분업을 해야 한다. 기업의 맹목적인 시설 이전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보 제공 등을 통해 리스크를 홍보함으로써 기업의 결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일보의 '중국을 다시 본다' 시리즈를 평가한다면.
문 교수= 주요 이슈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다룸으로써 지금까지의 다른 언론 보도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중국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기획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진행·정리=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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