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안 큰며느리인 재미동포로, 최근 서울을 방문한 남편의 전화를 받고 놀라 문의 드립니다. 서울에 사시는 60대 초반 시어머님이 남편과 말다툼을 하시고 그날 밤 가지고 계신 알약으로 자살기도를 하셨다 합니다. 시어머님은 저희들의 결혼생활 5년 동안 자주 미국에 오셔서 심하게 간섭을 하셨고, 급기야 "며느리를 잘못 얻어 모자 사이가 소원하게 되었다"는 원망을 사방에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차에 남편과 충돌하신 듯 합니다. 시어머님이 진실로 자살시도를 하셨는지, 아니면 저희들을 혼내려고 그러셨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뉴욕 방씨)답>놀라시고, 착잡하시겠습니다. 고부 갈등과 세대 갈등, 문화 갈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황이군요. 그러니 그 잘못을 어디에서 찾고, 또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 지 막막하실 것입니다.
다만 이번 시어머님의 음독자살기도가 어느 만큼 심각하냐는 댁의 물음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자살기도는 크게 목적달성을 위한 시위엄포용 기도와 정말 죽고자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만, 상당수가 그 중간에 있어 판가름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판단기준은 이렇습니다. 첫째 시어머님이 잡수신 약이 무슨 약이냐가 중요합니다. 청산가리 같이 한방에 죽을 독극물이냐, 아스피린 같은 덜 독한 약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덜 독한 약일수록 엄포용 자살기도에 가깝습니다. 둘째, 삼킨 약의 양입니다. 많을수록 심각한 기도이지요. 셋째, 음독장소가 집에서 멀수록, 그리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택할수록 심각합니다. 넷째, 음독시간입니다. 초저녁에 먹을수록 긴 밤 동안 약이 퍼져 효력을 볼 것이고, 새벽에 먹었다면 아침에 사람 눈에 잘 띄어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엄포용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음독한 뒤에 '껙, 껙' 토하는 소동을 벌리거나 "나, 약 먹었다" 고 소리치는 사람은 시위 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섯째, 유서를 써 놓았는가 여부입니다. 유서가 있을수록 심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유서가 눈에 띄기 쉬운 장소, 예컨대 자기 몸 위에나 호주머니나 책상 위라면 더욱 심각한 기도입니다. 끝으로,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로 소생한 다음에도 계속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경우는 아주 심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어머님의 기도가 시위 목적이건 죽을 목적이건 간에 한번은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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