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 협상의 세부원칙(모델리티) 1차 초안 발표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관세와 보조금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은 '원칙 보다는 실리'를 챙기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단체의 눈치만 보다가 최소한의 요구마저 관철 시키지 못할 경우 닥쳐올 농가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위기감에 따른 조치다.정부가 이번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한 제안서는 농산물 수입국(NTC)그룹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EU)의 개방안에 핵심 농산물에 대한 예외 조항을 추가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너무 급진적인 제안을 내면 의견 자체가 완전히 무시돼 논의 조차 되지 않을 것 같아 전략적 차원에서 EU안을 우리 실정에 맞춰 보강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정부의 안이 모델리티 초안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케언즈그룹)이 모든 관세를 25% 이하로 묶는 관세 상한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정부의 제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국내 농가가 입는 피해와 여파는 여전하다. 국내 보조금은 약 1조4,900억원(2004년 기준)으로 이중 90% 이상이 농민들에게서 추곡을 사들일 때 투여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보조금 감축안에 따르면 55% 감축 시에는 무려 8,000억원의 보조금이 줄게 되며, 20% 예외 규정이 받아들여지더라도 3,000억원의 보조금이 줄어든다. 이 경우 추곡 수매제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할 뿐 아니라, 기타 농산물도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쌀 등 핵심 농산물에 감축률을 적용키로 한 것은 쌀 관세화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림부는 농산물 수입 관세의 경우 식량 안보 등 각국의 핵심 농산물(한국의 경우 쌀)에 대해서는 선진국 10%, 개도국 6.7%의 최소 감축률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추가해 제안서에 담았다. 이는 관세화를 통한 개방이 불가피한 쌀 시장에 대한 사전 대비적 성격이 강하다. 농림부 관계자도 "EU의 농산물 개방 제안서에는 없지만 정부가 이번 제안서에 추가한 핵심 농산물에는 쌀도 포함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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