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죽었다'(아트북스 발행)라는 과격한 제목의 책을 내놓으면서 미술사학자 겸 평론가인 심상용(42·동덕여대 미술학부 교수)씨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천재는 죽었다? 그는 이 선언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천재의 개념 자체가 신화이고 허구이다. 둘째, 특히 현대가 천재의 생존에 매우 부적절하다.그에 따르면 천재는 '휴머니즘의 오랜 역사가 잉태한 야망의 산물이자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낳은 발명'이다. 현대는 예술을 철저히 제도화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나는 천재를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세상과 대립하는 대신 '평화공존'을 택함으로써 저항과 혁신을 사명으로 하는 고전적 천재론을 폐기하고 있다. 나아가 제도권의 배려와 지원에 몸을 맡김으로써 말 잘 듣는 애완견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천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미술의 선동, 그것을 부추기고 지지하는 시장체계에 대해 이 책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짓된 신화로 더 이상 예술을 능멸하지 말라는 격렬한 항의이기도 하다.
"신화는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천재는 명품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세계 몇 대 예술가' 식으로 빌보드 차트처럼 위대한 예술가의 순위가 매겨지고, 그 명단에 몇 년 오른 작가는 천재로 분류돼 대학 강의 내용에 포함되지요. 전문가들이 알아 모신 천재를 다루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니까요. 우리 시대는 더 이상 느리게 성숙하는 작가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제 예술계 전체의 최대 관심사는 '재주꾼'을 발굴하고 냉큼 신화화하는 '공정'(工程)에 있습니다."
책에서 그는 천재임을 공인받기 위해 '자기현시'에 몰두하는 예술가, 상품을 분류하듯 예술가를 선별하는 각종 제도의 부당성을 가시 돋친 말로 공격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예술(?)'을 보라.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주절대기, 홀딱 벗고 첼로 켜기, 예수상을 오줌통에 빠뜨리기, 괴물 흉내내기, 자신의 살을 난자해 전시하기, 살 속에 이물질 삽입하기…. 무엇보다 극악한 것은 소동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길 없는 이런 것들을 지식과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거짓 선동이다."
세계적 작가를 발굴해서 '띄우는' 비엔날레도 그가 보기엔 '남아도는 자본이 베푸는 초호화급 배려'이자 '가장 반미학적이고 관료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몇몇 스타를 부양하는 노골적인 전략' 일 뿐이다. 그렇게 '불려 나온' 스타들은 영웅이 되는 반면 대다수 예술가들은 쓰레기더미에 처박힌다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 분노가 느껴진다고 말하자 그는 아닌게아니라 "이 시대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오늘날 미술관은 대중을 존중하는 척 하면서 실은 '니들이 미술을 알아? 수준이 안되면 쇼핑이나 해'라고 기를 죽이지요. 미술관이 공인하고 보증한 천재와 작품의 견고한 권위 앞에서 관객에게는 그저 박수 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불완전해서 유보해야 할 믿음이 있는데도, 의심 없이 믿을 것을 종용하는 겁니다."
수동적 예술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는 "매스미디어의 지원을 받으며 왕성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거짓 천재를 넘어 우리의 시선을 아직 쓰여지지 않은 역사로 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천재를 생산하고 수입하고 존경하는 데 바치는 돈과 흥미를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천재는 아니지만 잠재력을 지닌 젊은 예술가를 지원해 외롭지 않게 해야지요. 천재를 앞세운 대형 전시와 화려한 파티, 선전의 뒤편에서 죽어가는 것, 가치있고 소중하지만 소외된 소수자의 문화를 언급하고 그들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 소통시켜야 합니다. 시장이 없는 건 보호할 필요도 없다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따른다면 예술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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