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의 와중에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세운 교회 언저리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그 교회는 당시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였으며 기독교는 내 행동의 규범이자 근거였다. 또한 부모님은 북한에서 월남한 반공주의자였던 까닭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요새말로 보수 우익 광신도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서 선망의 땅이었으며 미국 사람은 천사처럼 보였다. 불교는 나쁜 종교여서 절간은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고, 미국 것이 좋은 까닭에 우리 옛 것은 상스럽고 볼품 없는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랬다. 한국건축사는 내가 공부할 과목이 아니었다. 1970년대 독재정권이 왜곡한 전통문화는 더욱 멸시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이 호도했던 '한국적'이란 말은 수치심과 동의어였다.그러다가 '한국미술문화사논총'(韓國美術文化史論叢)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우현 고유섭 선생이 남긴 글을 황수영 선생이 모아 통문관에서 1966년에 발간한 이 책은 나를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다. 대학 졸업 직전인 그 때, 미국에 유학 갈 궁리만 하고 있던 내가 이 책 속에서 만난 우리 문화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은 그렇게 한스러움과 유약함과 슬픔에 젖어있지 않고 오히려 해학과 낭만과 창조의 힘이 곳곳에 퍼져 있지 아니한가. 몇 번을 읽은 후 나는 미국 갈 계획을 버리고 말았다. 이 땅과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무지 건축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모든 '한국'이 새롭게 보이게 되었으며, 옛 집과 불교 사찰은 나에게 놀라운 건축의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전통'이란 결코 이러한 '손에서' '손으로' 손쉽게 넘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피로써' '피를 씻는' 악전고투를 치러 '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이 책 속의 한 구절이 나를 개조하고 급기야 내 건축의 중요한 키워드인 '비움'의 가치를 발견하게 한 것일 게다.
승 효 상 건축가 이로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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