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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구름을 만들어보세요

입력
200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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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 콜 지음·이충호 옮김·해냄 발행·1만2,000원뉴욕타임스 1면 기사는 가끔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1994년 1월27일자 1면은 '페르마의 최후 정리'가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로 도배됐다. 미국 프린스턴대 시몬 코헨 교수가 6개월 전 이 정리를 증명했다는 논문을 동료 앤드류 와일스 교수를 통해 발표했지만 증명에 문제가 있다고 시인한 뒤 보완해서 새 증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17세기 수학자인 페르마가 남긴 마지막 정리? 그 증명이 400년 가까이 수학계의 큰 숙제였던 정리는 'xn+yn=zn에서 n이 3 이상의 정수인 경우 이를 만족하는 자연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그보다 10년쯤 앞서 뉴욕타임스는 '힘은 입자가 전달한다'는 물리학 추론을 증명하는 W와 Z입자(방사선 방출에 관여)를 유럽공동원자핵연구소(CERN)가 발견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힘이라면 신체의 근력, 정전기, 불어 닥치는 바람이나 조수의 흐름, 용수철의 탄력, 제트기의 추진력 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런 기사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 이런 힘을 발로 돌부리를 찰 때의 느낌처럼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과학의 발전이 눈부시고, 이론이 현란해질수록 대중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허공의 구름을 잡는 듯한 개념 앞에 당황하게 되고 무수한 기호 속에서 금세 길을 잃는다. 저자 콜은 우물에 빠진 것 같은 그런 과학의 개념을 생활 속으로 길어 올리는 과학 칼럼니스트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글을 쓰고 UCLA에서 강의하는 그가 저술을 통해 펼쳐 온 과학 대중화 작업은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이 물리학, 지난해 타계한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진화생물학에서 이룩한 성과에 견줄 만하다.

이 책은 관성, 반작용, 중력, 전기, 상호작용 등 뉴턴 물리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 개념은 물론 시간과 공간, 상대성 이론, 공명, 파동, 대칭, 패턴, 인과 등 현대 이론 물리학과 천체 물리학의 중심 개념을 풀어서 설명한다.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서 파인만, 빅토르 바이스코프, 스티븐 와인버그, 프랭크 오펜하이머 등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상황을 끌어 비유한다.

중력을 설명하면서 무거운 소파를 밀려고 할 때 소파를 움직이기 힘든 것은 중력으로 복잡하게 얽힌 전체 우주를 뒤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 현상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은 거의 대부분 은유일 뿐이라며 '광파는 잔잔한 연못 위에서 물결치는 수면파처럼 진공 속에서 물결치며 나아가는 게 아니고, 장은 어떤 넓은 마당이나 초원이 아니다'고 설명한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는 표현은 사랑이 가슴을 찢는 고통을 준다는 표현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도 밝힌다.

이 책이 단순히 과학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물리학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라는 부제처럼 '과학은 우리 삶에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가 곳곳에 녹아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척도와 한계를 느끼게 해주고 전망을 평가하고 모호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상상력의 날개를 펴게 해준다' 정도면 너무 상투적 답일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냐. 양자역학의 이론을 모른다고,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달플 일도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을 위해 저자는 이런 예를 준비했다.

페르미입자가속기연구소에 거대한 원자 충돌 장치를 만든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이 양성자 연구가 국가 안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고 늘어지는 한 상원의원과 맞닥뜨렸다. "입자 가속기가 국가 안보와 조금이라도 연관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니오"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하고만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훌륭한 조각가나 시인인가 하는 것과 관계가 있지, 국가 방위와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나라를 지킬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입니다."(23쪽)

95년 미국물리학회 우수과학저술상을 받은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수학'과 '우주의 구멍' 등 그의 다른 대중 과학서도 이미 국내에 번역돼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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