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송금 의혹과 관련, 당시 국정원장인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가 대북송금의 결정과 집행을 주도했다는 증언들이 여권 내부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7일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이 있기 직전 국정원은 '현대가 망하면 남북교류협력 추진도 끝장난다'는 보고를 수시로 청와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은 남북간 교류협력 추진방안을 논의하는 고위급 회의에서도 현대에 대한 지원을 강력히 요구했었다"며 "국정원이 남북관계를 염두에 두고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다른 고위인사는 "현대가 7대 경협사업을 추진하면서 북한에 상당한 대가를 약속했고, 정상회담이 열리면 대북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 애를 썼을것"이라며 "현대는 국정원과 함께 정상회담과 경협사업을 패키지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정원이 정상회담 성사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현대를 대신해 대북사업 자금을 조달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2,235억원은 현대의 대북경협 자금인 동시에 정상회담 대가인 셈이다. 이 인사는 "임 특보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며 "임 특보도 최근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진실을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의 고위인사들과 경제부처 장관들도 "대북 송금 문제는 물론이고 남북정상회담 추진조차 제대로 몰랐을 정도로 국정원과 임 특보 중심으로 일이 추진됐다"고 말했다. 실제 국정원이 산은 대출과 대북송금 과정에 개입한 흔적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유동성 위기로 현대에 대해 채권단이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던 때에, 그것도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이 현대상선 요청만으로 거액의 비정상적 해외송금을 승인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대북송금 직전 국정원 관계자가 김경림(金璟林) 당시 외환은행장에게 대북송금 협조를 요청했다는 얘기도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2000년 8월 취임한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 총재가 부임 직후 현대상선 대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임 당시 국정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한 것도 국정원 주도설을 뒷받침하는 방증이다. 그 때 엄 전총재는 국정원장 대신 김보현(金保鉉) 대북담당 3차장을 만나 "걱정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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