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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천년의 학술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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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천년의 학술현안

입력
200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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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난 지음, 심규호 유소영 옮김 일빛· 전 2권 각 1만4,800원중국 후한(後漢)시대인 BC 112년 여름. 어느 지방에서 1,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청동 정(鼎·세 발 달린 솥)이 나왔다. 신하들은 무제(武帝)에게 "신선이 되실 징조"라며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고 부추겼다.

태사령(역사를 기록하던 관리)인 사마담(史馬談)은 반대했으나 무제는 그를 배제하고 다른 신하들과 함께 제사를 강행했다. 국가 대사를 기록하지 못한 사마담은 모멸감에 병이 들었고, 아들 천(遷)에게 가업을 넘기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를 이어 태사령이 된 사마천은 흉노에게 패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얻어 궁형(宮刑·거세)을 받았지만 불후의 명작 '사기(史記)'를 남겼다. 분서갱유(焚書坑儒) 등으로 많은 사료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룩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주(西周)의 공화(共和) 원년인 BC 841년을 역사의 기년(紀年)으로 삼았고 하·상·주(夏商周)에 대해서는 추론만을 남겼다.

그로부터 2,000여년이 흐른 1996년 5월 베이징(北京). 베일에 싸인 하상주의 연표를 작성하기 위해 중국 최고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천문학자, 연대 측정학자 등 200여명이 모였다. 사마천이 공백으로 남긴 1,200여년간의 역사를 되살리려는 원대한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총책임자는 국무위원 겸 국가과학위원회 주임인 쑹젠(宋健). 1960년대 이후 지대공미사일 설계를 비롯, 핵미사일, 우주항공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둔 그가 문명 발상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학자들은 9개 과제, 44개 전문분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법론과 측면에서 역사의 퍼즐을 맞춰 나갔다. 고고학 자료는 물론 갑골문·금문을 수집해 감정하고, 천문역법 기록을 현대 천문계산법으로 해석해 연대를 추정했다. 발굴유물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통한 검증과 치열한 논쟁도 거쳤다. 4년 6개월의 대장정 끝에 하대는 BC 2070년, 상대는 BC 1600년, 은(殷) 천도는 BC 1300년, 주대는 BC 1046년에 시작된 것으로 설정됐다.

이런 대장정은 '법문사의 비밀' '오랑캐의 지하궁전' 등으로 널리 알려진 다큐멘터리 작가 웨난(岳南·40)에게 다시 없는 기회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던 그는 일련의 과정을 '천년의 학술현안'으로 묶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갑골문이 용골(龍骨)이라는 약재로 유통되다가 뒤늦게 확인된 경위, 상의 마지막 왕인 주(紂)가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나라를 망친 과정 등 역사인물, 유물, 유적 관련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줄줄 쏟아낸다.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박학다식에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딱딱하고 어려운 고고학적 소재를 평이한 대화체 문장과 친절한 설명으로 전한 것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으려는 의지와 노력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해 대중에게 전하는 자세가 대단히 교훈적이며 시사하는 바도 크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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