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슬라이드 필름, 오디오, 비디오, 그래픽 자료 등을 총동원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 의혹을 제기했다. 미 언론들은 이를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지칭했다.그러나 그가 증거라고 제시한 내용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확실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을 하고 있다. 파월 장관의 주장(증거)과 그 신빙성을 짚어본다.
사찰 대비 증거 은폐(이라크 통신 도청)
유엔 무기사찰단의 사찰 시작 전날인 지난해 11월 26일. "개조한 트럭이 있는데 사찰단이 보게 되면 뭐라고 말하나(대령)." "무슨 소리냐. 내가 아침에 가겠다. 다 치우지 않았는지 걱정된다(준장)." "모두 치웠다. 남은 건 없다(대령)."
또 다른 도청 내용. "사찰단이 그 쪽 탄약을 조사할 것이다. 폐기 지역과 버려진 지역을 검사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대로 따른 뒤 메시지는 파기하라."
파월은 도청 내용이 이라크가 유엔이 금지한 무기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BBC 방송은 "도청 자료는 이라크가 무기사찰단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대량살상무기 보유·은폐(위성사진·비디오·도청)
파월은 사찰을 앞두고 깨끗이 치워지고 있는 화학무기 벙커, 사찰 재개 이틀 전 화학무기와 미사일 관련 시설에서 행렬을 지어 이동하는 트럭 등을 잡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이동식 생물무기 생산시설은 이라크 화학 기술자 증언을 토대로 정밀한 그래픽으로 구성됐다.
최소한 7개인 이동시설은 트럭 18대에 실어 은폐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알루미늄 튜브 사진, 미사일 시험발사 시설 사진, 빈 화학탄두 및 1991년 탄저균 살포 항공기의 시험비행 비디오도 제시됐다. 도청 테이프에는 "무선통신에서는 신경가스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지시도 담겨 있다.
그러나 위성사진은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정확히 입증하지는 못한다. 알루미늄 튜브도 핵무기 제조가 아닌 로켓 제조용일 가능성이 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찰단은 지난달 16일 발견한 빈 화학탄두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알 카에다와 연계(정보원 증언)
테러조직 알 카에다 요원들의 신상과 활동, 접촉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이런 증거들은 그 동안 유럽 국가들에서 알 카에다 관련 인사들이 체포됐고 리신 등 독극물이 발견된 만큼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알 카에다 조직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통치권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이라크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파월이 인정했고, 오사마 빈 라덴의 고위 측근이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자유롭게 활동했다는 정도만 제시된 상태여서 이라크 정부와 알 카에다의 전방위적인 연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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