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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늬들이 로또의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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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늬들이 로또의 맛을 알아?"

입력
200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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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500만원이 생긴다면? 음, 남편 자식 다 떼어놓고 혼자서 스페인 일주를 해 볼까. 1,000만원이 생긴다면? 스페인에 다녀온 후 백화점에서 찜 해 놓은 명품 핸드백이랑 반지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5,000만원이 생기면? 글쎄, 뭘 할까. 얼른 생각이 안 나네. 500억이 생기면? 헉, 이젠 정말 감이 안 잡힌다. 누구는 부실기업 하나 인수해서 회장하겠다고 농담을 던지지만 내게 500억이란 숫자는 두렵기까지 하다.온 나라에 갑자기 로또 광풍이 불고, 인터넷 검색 1위 단어가 섹스에서 로또로 바뀌었다는 건 아무래도 그 몇 백 억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파인 것만 같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 로또를 공동구매해 상금을 나누겠다는 사람들, 행운의 숫자를 뽑아준다는 컴퓨터 프로그램, 당첨 확률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식 정보들….

못된 상사를 만나 한동안 마음 고생을 했던 한 후배는 "그 시절 나의 유일한 낙은 매주 한번씩 복권을 사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몇 장의 복권을 지갑에 넣어놓고 발표 날짜를 기다리며 시름을 달랬다는 것이다.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놀라는 나에게 그는 "복권사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면 그건 인생의 쓴 맛을 못봤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최근의 로또 바람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많은 이들이 "안 돼도 상관없어요. 대박의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니까"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렇담, 지금의 로또 열풍은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얘기? 하지만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인생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진리다. 세기의 결혼으로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던 다이애나는 세기의 비극으로 생을 마치면서 모두가 부러워했던 행운의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TV뉴스는 항상 500억 대박이 터지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 후 벌어지는 인생역전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인생역전이 좌로 180도 회전인지, 우로 270도 회전인지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 중학생에서 할머니까지 로또 매장으로 몰려들어 여섯자리 숫자를 조합하고 있는 광경은 우리 사회의 한탕주의가 연령 불문으로 확산된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을 바라보고 몇 십만원 어치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달걀 이고 가면서 닭 팔고, 돼지 팔고, 집 사는 공상 끝에 달걀만 깨먹은 동화속 처녀같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이렇게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쓴 맛도 모르는 것들이 잘난 척 하기는. 니가 로또의 맛을 알어?'"

/이덕규·자유기고가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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