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출범할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건설'을 국가적 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동북아시아 지역이라 하면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왕이면 '동아시아 중심국가'라고 좀 더 크게 비전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더욱이 과연 세 나라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것인지조차 아직은 다소 막연하다.한국이 진정으로 동북아 중심국가의 건설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돈과 물자'의 중심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미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생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외국인 비즈니스맨, 노동자, 학생, 문화인 등이 한국에 거주하면서 소외의식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을 '중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의식은 그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한국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할 때 민족주의적 성향과 배타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반도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인들은 오랜 동안 외부인들과 별 교류가 없이 고립된 채로 살아왔고, 이는 외부인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근· 현대에 들어 일본의 국권 강탈, 미국과 소련에 의한 강제 분단은 외국 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극대화시켰다.
또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신화는 강한 혈통의식, 유일민족의식을 만들어냈다.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은 19세기말 이후 이 땅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중국인들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1931년 만보산 사건 때 만주의 동포들과 중국인들이 충돌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평양시민들은 중국인 100여 명을 하룻밤 사이에 학살하였다.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정부는 중국인들의 재산권과 직업선택권을 제한하는 등 사실상 한국에서 살기 어렵게 만들어 결국 그들이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압박했다.
배타성은 차별의식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잘 나타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공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고용허가제를 기피함으로써 35만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27만 명을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놓고, 그들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을 바꾸지 않고 있는 우리 의식의 바탕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와 평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마치 조선시대의 머슴쯤 되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의 천국이라고 하는 캐나다의 뱅쿠버시 입구에는 '다문화도시 뱅쿠버입니다'라는 아치가 서 있다. 다인종국가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캐나다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별 도시에서부터 '다문화'를 지향하는 발전 전략이 돋보인다. 만약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를 지향한다면, 뱅쿠버시에서 배워야 한다.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려고 한다면 결국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다인종· 다문화국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영주권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돈과 물자만 오고, 사람은 오지 말라는 식의 동북아 중심국가론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박 찬 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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