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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국회 담 넘기

입력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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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배우가 국회의사당 철문을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광경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란 영화 촬영허가를 신청했으나, 국회가 허가해 주지 않아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다. 의사당 뒷길의 차량 통행을 막고, 구내를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변경을 강요하더니, 이제는 시민의 통행까지 막는 국회가 되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국회 정문을 닫아 건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 월장(越牆)에 성공한 여배우는 의사당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찍지 못하고 쫓겨났다. "넘어서 들어왔으니 나갈 때도 그렇게 나가라." 경비원들은 문을 열어 달라는 요구를 이렇게 일축했다. 여배우는 할 수 없이 또 철문을 넘어야 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딸 같은 여자에게 그런 일을 시킨 것이 입법기관 사람들이 할 일인지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철책을 넘어가는 모습을 밑에서 바라보았다면 성 희롱 아닐까. 통행의 자유란 기본권은 어떻게 되나.

■ 촬영허가를 몇 차례 거부당한 제작진은 주인공 한 사람만 정문으로 들어가고 촬영은 문밖에서 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국회측은 상업적인 영화를 국회에서 찍은 전례가 없다느니, 구경꾼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나 2001년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가 구내 잔디밭에서 촬영된 전례가 있다. 혼란 우려도 궁색한 변명이다. 그보다는 윤락녀가 국회의원에 당선돼 등원하는 장면이 못마땅하다는 게 비공식 경로로 흘러나온 진짜 이유다.

■ 어쩔 수 없이 제작진은 주인공이 국회 정문을 넘어갔다가 넘어 나오는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했다. 영화 속에서 국회는 전직을 의식해 국회의원 당선자의 등원까지 저지하는 권위주의의 전당으로 그려지게 됐다. 정치 코미디 반란극을 표방한 이 영화는, 동료의 강간사건 수사를 외면한 공권력의 직무유기를 고발하기 위해 정계에 진출한 윤락녀 이야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과민하게 반응하다가 더 욕을 먹게 됐다. 국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권부인가, 국민 위에 있는 것이 국회인가. 대답 없는 물음엔 메아리도 없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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